“정몽규 불출마가 한국축구 위기 수습의 첫걸음”

김경수 기자 2024. 9. 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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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 4선 저지해야” 막혀있던 축구계 내부 불만 표출
10월10·15일 월드컵 예선 3·4차전 ‘분수령’될 듯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퇴진 요구가 축구계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비등해진 축구팬들의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정 회장의 4선을 막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축구협회 내부에선 정 회장이 4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임기를 마치는 대로 떠나달라는 분위기다. 차기 회장에 대한 하마평도 무성하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정몽규 회장의 거취는 오는 10월10일과 15일 각각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요르단과 이라크와의 경기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앞)과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 정해성 전 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9월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연합뉴스

허정무·이영표 등 차기 회장 하마평도

축구협회를 향한 변화의 요구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반전은 없었다. 지난 9월24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의 거센 비판에도 정몽규 회장은 연임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정 회장은 "내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홍명보 감독도 선임 과정에서의 의혹 문제로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홍 감독은 "불공정하거나, 특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성적이 안 좋으면 언젠가 경질될 것"이라며 "지금 내가 맡은 역할은 남은 기간 우리 팀을 정말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생중계를 통해 이들을 지켜본 축구인의 심경은 착잡한 모습이다.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참아왔던 불만이 서서히 표출되는 모양새다. 축구협회 노조 운영위는 성명서를 통해 정 회장 체제를 비난했다. 노조 운영위는 "더 이상 정몽규 집행부의 헛발질로 인한 부끄러움을 축구협회 구성원 모두가 끌어안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정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한국축구 위기를 수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축구계에선 정 회장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그의 4연임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관측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선거와 달리 축구협회장 선거는 K리그, WK리그, 대학리그, 지도자, 심판, 동호인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축구협회장을 직접 선출하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이어 대한축구협회장 3연임에 성공하면서 축구계 내부 기반이 탄탄해진 정 회장이 선거에 나오면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축구협회 수장은 현대 정씨 일가들이 20년 넘게 계속 장악하고 있다. 축구계에 오래 몸 담은 정몽규 회장 또한 영향력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위기 때마다 정 회장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4선 연임을 포기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언제까지 정 회장이 버티기로만 일관할 순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는다. 축구계 내부와 축구팬의 비판에 이어 정부와 국민 여론의 압박 강도가 점점 거세질 것이란 전망 탓이다. 정 회장은 10월2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발표에 이어 10월22일에 열리는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소환된다.

계속되는 국회 출석은 정 회장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심경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정 회장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만약 정 회장이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4연임을 강행할 경우 승인을 불허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최후통첩을 날리기도 했다.

축구협회 논란이 지속되면서 차기 축구협회장에 대한 다양한 하마평도 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축구협회 복수의 관계자 등에 따르면, 회장 출마 가능성이 높은 인사로는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이영표 전 강원FC 대표이사 등이 꼽힌다.

허 전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코치·감독과 해설위원·행정가·경영인 등 축구인이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두루 거쳤다. 선수 시절에는 유럽으로 진출해 PSV 에인트호번에서 활약한 19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2013년에는 축구협회 부회장직을 역임한 바도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직을 사퇴한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대전 하나 시티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축구 관련 행정이나 경영 쪽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대항마로 '젊은 피'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출마를 선언했듯, 축구계에서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이영표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그것이다. 축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2002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 해설가, 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거치면서 구설수 없이 무난히 직무를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축구협회를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10월 요르단, 이라크와의 경기를 앞둔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성적으로 보여줄 것" 홍명보 운명의 2연전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을 치른다. 10월10일 요르단과의 원정 경기를, 15일에는 이라크와 용인미르스타디움서 홈 경기를 잇달아 치른다. 두 팀과의 월드컵 예선은 축구협회와 대표팀에게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종 예선인 3차 예선은 각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한국은 2경기를 치른 현재 B조 6개 팀 중 2위를 기록 중이다. 첫 경기에서 약체 팔레스타인을 홈경기에서 이기지 못한(0-0 무승부) 여파가 컸다. 조 선두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되는 요르단·이라크와의 맞대결은 월드컵 본선을 향한 최대 고비가 될 수 있다.

정 회장과 홍 감독에게도 이번 2연전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 축구가 시원한 승리를 거둔다면 팬들의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 모두 실망을 안겨준다면 정 회장과 홍 감독을 향한 사퇴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홍 감독은 국회 현안 질의에서 "성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사퇴 압박 국면에서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지금의 홍명보호는 승리는 물론 승점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축구인들의 우려섞인 전망이다. 축구는 분위기 싸움인데, 문체부의 중간 감사 발표와 국정 감사까지 예정돼 있어 분위기가 상당히 침울한 탓이다. 중요한 시점에,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반면 두 경기에 대한 결과가 설령 좋다 하더라도 과연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돌아설까에 대해 축구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홍 감독은 몰라도 12년째 축구협회 수장을 고수하고 있는 정 회장에 대한 퇴진 요구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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