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수원, 4월 체코 원전 입찰 때 "건설비 빌려주겠다" 제안했었다

나주예 2024. 9. 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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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제안서 내며 "최적 조건 금융 지원" 제안
한국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관심 서한 발급
신영대 "한국 정부 돈 투입 약속하며 수주한 셈"
체코 원전 입찰 당시 정부가 체코 정부에 제출한 관심 서한. 신영대 의원실 제공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수주 입찰 마감 시점이었던 올해 4월 체코 정부 측에 원전 건설 과정에서 금융 지원을 제안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7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 때만 해도 한수원 등은 "체코 정부가 원전 건설 자금을 자체 조달할 계획이며 금융 지원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석 달 전에 금융 지원 카드를 제시한 셈이다.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서한을 보면 한국수출입은행(수은)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는 공동 발급한 '관심 서한(Letter of Support)'에서 체코 정부 측에 "두코바니 6호기 및 테멜린 3·4호기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한국이 수주한다면 '가장 최적의 금융조건 제공'을 고려한다"고 제안했다. 서한에서 두 기관은 "한국 수출 신용 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한수원이 입찰을 준비 중인 위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고려할 의사가 있음을 나타낸다"며 "가장 유리한 금융 조건(금액, 기간, 마진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서한은 4월 신규 원전 입찰 때 한수원이 제안서를 내면서 함께 동봉돼 체코 측에 전달됐다.

실제 체코 정부는 2월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체코 재무부는 전략투자위원회 회의에서 국가 예산이 앞으로 10년 동안 새 원전 건설 같은 전략적 투자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기타 자금 조달 방안으로 유럽연합(EU) 유럽투자은행(EIB) 대출을 활용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EU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핵폐기물 처리장 확보와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폴란드 정부 또한 2022년 웨스팅하우스를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자금조달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입찰 마감 전 "가장 최적조건의 금융지원 약속" 영업

그래픽=신동준 기자

한수원은 올 7월 체코 원전 수주 관련 브리핑에서 "금융 지원 조건은 없었다"고 강조해왔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7월 18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 경우에는 금융 지원은 없다"고 밝혔으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또한 19일 체코 프라하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체코 정부는 원전 건설 자금을 자체 조달할 계획이며 현재까지 체코 측 금융 협력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찰 참여 전부터 한수원이 체코 정부가 6호기 건설 자금 마련 때문에 고민에 빠진 상황에서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히기 위해 "한국의 금융 지원" 카드를 들고 한국 정부 기관을 통한 대출 지원을 먼저 제안한 셈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날 "4월에 입찰 당시 해당 서류를 함께 제출한 게 맞다"면서도 "5호기는 체코 정부 예산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6호기에 대해선 체코 정부가 연내에 조달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원전 수주 과정에서 한수원이 금융 지원책을 제안한 점을 알고 있었다. 최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순방 당시 체코 재무장관을 만나 원전 건설을 위한 양국 간 금융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서 금융 지원에 대한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서 정부는 올 7월 '팀코리아'가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 등 삼파전에서 다른 기업들을 꺾고 최소 24조 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의 'on-time within budget(기한·예산 내 완료)' 경쟁력을 입증하면서 15년 만의 원전 해외 수출로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일부에서는 원전 수주에 따른 경제성에 대한 물음표를 달아왔다.

실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수은은 UAE 측에 25억 달러가량의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등 비슷한 방식의 계약이 이뤄졌다. 현 정부의 목표대로 테멜린 3·4호기까지 4기의 원전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원전 건설비가 48조 원까지 불어나지만 재정이 취약한 체코 정부가 이 비용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냐는 걱정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신 의원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금융 지원 같은 특별한 혜택 제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저가 수주 논란도 모자라 금융 지원까지 해주는 것은 결국 한국이 돈 내고 원전을 지어주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우려만 키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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