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해소하자면서 채소는 금값…건강, 개인 몫으로 둘 건가요?” [건강한겨레]

윤은숙 기자 2024. 9. 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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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겨레 | 건강이 사회에 묻는다
① ‘젊게 늙는 사회’ 펴낸 조병희· 정영일 교수
보건사회학 1세대 대표학자로 꼽히는 조병희 서울대 명예 교수(왼쪽)와 정영일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내 건강은 내 탓’이라는 오래된 통념에 물음표를 던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교수는 공저 에서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 사회적 구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여성일수록 뚱뚱하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유병률도 높다. 특히 학력에 따른 차이가 크다. 중졸 이하 여성의 비만율은 40.5%다. 고졸은 29.8%, 대졸 이상은 20.7%였다. 중졸 이하와 대졸 이상은 비만율에서 약 20%포인트까지 격차를 보인다.’

지난해 발표된 2023년 한국여성건강통계 결과다.

위 통계는 ‘내 건강은 내 탓’이라는 오래된 통념에 물음표를 던진다. 건강은 오롯이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일까? 보건사회학 1세대 대표학자로 꼽히는 조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 사회적 구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노인보건 전문가인 정영일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와 함께 ‘젊게 늙는 사회’라는 책을 내어 통계라는 렌즈를 통해 건강의 의미를 되짚어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서울 종로구에 있는 방송통신대 나눔관에서 두 교수를 만나 통계로 보는 건강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여성 비만율 격차’ 인포그래프

-통계를 통해 건강 문제를 다뤘다. 어떤 의미가 있나?

조병희 교수(이하 조)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중요한 도구로 추세를 반영한다. 취약한 지점도 알려준다. 지역별 수명 차를 보자. 수명 격차를 단순히 해당 지역 사람들의 생활 습관 탓으로 돌릴 수 없다. 환경오염, 의료 서비스 접근성, 경제적 불평등 등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숫자의 변화 속에서 사회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건강통계는 의미가 없다.

-정책 결정에 통계가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나?

정영일 교수(이하 정) 국가예방접종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가는 일부 백신은 65살 이상 노인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독감·폐렴 등 때문에 사망한 노인 통계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다. 백신 접종비 지원이 의료 이용비 감소, 사망률 감소 등 구체적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 덧붙이자면 자세한 통계가 있더라도 사안이 복잡하면 정부가 쉽게 해결책을 못 낸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이고, 특히 젊은층과 노인층의 자살률이 높다. 다리에 난간, 안전망, 폐회로티브이(CCTV) 같은 구조물 설치는 즉각적인 자살 시도를 막고 주저하도록 유도하지만, 사회적 지지 시스템 강화, 빈곤 완화 등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사회적 환경이 개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다.

조 우리가 흔히 놓치는 것은, 건강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거 환경, 경제적 수준, 교육 수준 등은 모두 개인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멕시코의 예를 보자. 1980년대 10% 미만이었던 멕시코의 비만율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파르게 치솟았다. 미국의 저렴한 가공식품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식생활이 완전히 변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해결법은 무엇인가? 건강한 식량의 조달이다. 이게 해결 안 되면 비만 문제 해결은 어렵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비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이어트해라’라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식재료를 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이 부분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 농수산 정책도 건강과 연결돼 있다. 이처럼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건강증진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좁혀놓았다. 이게 한계다.

-그렇지만 여전히 ‘건강은 개인의 관리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는 일이 쉽진 않을 것 같다.

조 우리 사회는 머리가 조금만 아파도 배가 조금만 아파도 다들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환경, 문화, 정책, 교육에 대한 논의가 펼쳐지고 참여할 틈이 없었다. 건강과 의료는 다른 문제인데, 결국 의료에서만 생각하는 틀이 공고하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건강과 사회구조의 연결고리를 찾기 쉽지 않다.

정 건강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각자의 조례와 예산을 가지고 건강에 우호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곳도 있다. 다만 중앙정부에서는 여전히 건강을 보건복지부만의 문제, 혹은 의료와 의학 영역만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됐듯 환경, 노동,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사회적 요소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여러 부처의 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부처별로 칸막이가 처져 있다. 사회 건강증진이라는 목표를 두고 부처별 소통과 조정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건강을 위한 기관 사이의 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초고령화가 가장 큰 화두다.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선행 과제가 있나.

조 노인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돌봄’ 문제가 부상할 것이다.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이 지역 사회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일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통합적 건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만 해도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관악구와 고령자가 많은 노원구가 건강증진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다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지자체들이 내부적 돌봄 자원을 발굴하는 일이다. 돌봄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은 노인을 시설로 몰아서 빨리 죽게 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건강증진 효과도 있다.

정 지금 의료비 증가가 노인 인구 증가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현재 전체 의료비 중 노인이 쓰는 의료비가 50%에 가깝다. 건강 문제를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향후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의료 맹신, 과잉 의료 사용 등을 막기 위해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단계에서 의료 의존적인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적 건강증진과 적극적인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절실하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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