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비첸코가 ‘러시아 거장’의 악수를 거부한 이유…“전쟁은 현실, 대중음악 모르지만 BTS는 알아” [인터뷰]
우크라이나 출신…바딤 레핀 악수 거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6월 2024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 무대.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우크라이나 출신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의 이름이 최후의 순간에 울려 퍼졌다. 벅찬 표정으로 무대에 등장한 우도비첸코, 이내 그의 단호한 행동에 전 세계가 숨을 죽였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은 ‘러시아 거장’ 바딤 레핀의 악수 제안을 거부해서다. 그 모습은 곧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요즘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점이에요. 무엇을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죠.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가 벌인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바딤 레핀은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러시아 정부의 후원,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레핀은 러시아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이다.
콩쿠르 우승 기념 연주회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로 우도비첸코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대만에서 막 연주를 마치고 날아온 그는 “레핀에게 개인적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거나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과는 함께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며 단호히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나고 자란 그는 비올라를 공부한 부모님 밑에서 4~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다. 17세가 되던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 공부를 마친 뒤 독일 에센 폴크방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의 콩쿠르 우승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우크라이나에게도 위로와 힘이 됐다. 그는 “짧은 순간이나마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행복한 감정을 드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며 “여전히 전쟁에 시달리는 조국에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 부역자들에겐 엄격하고 완고한 입장이지만,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까지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음악은 정치적 맥락과는 벗어나 있다”며 “쇼스타코비치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장 가깝게 묘사하고 있는 곡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살아가는 현실을 음악으로 공감하게 하는 곡이라 콩쿠르에서도 연주했다”고 귀띔했다.
우도비첸코는 2년 전부터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를 사사하고 있다. 그는 “(테츨라프는) 이 시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라며 “교수님과의 레슨은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받아들이는 기회를 준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게 한다. 음악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법, 연주 기법 등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음악 앞에선 끊임없이 탐구하고 진중하면서도 음악을 떠나있을 땐 스스로 ‘숏츠 중독’이라 할 만큼 종일 휴대폰을 달고 산다. 온라인 체스에 푹 빠졌고, 친구들과는 ‘피파’ 게임을 즐긴다. 클래식 음악만 듣고 배운 터라 대중음악은 잘 모른다. 그래도 “‘방탄소년단(BTS)과 K-팝’은 알고 있다”며 웃었다.
첫 한국 방문에선 연주 일정이 빡빡하다. 지난 24일 울진을 시작으로 25일 경주, 27일 당진, 29일 제주 서귀포에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자 콘서트’를 연다. 26일 서울에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오는 11월엔 DMZ국제음악제를 위해 다시 한국을 찾는다. 콩쿠르를 통해 도약한 그는 이제 더 큰 바다를 향해 나설 생각이다.
우도비첸코는 “콩쿠르 우승 이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빠르게 달라졌는데, 그것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젠 콩쿠르를 벗어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고 싶다. 앞으로의 과정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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