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백범 김구 머무른 은둔 사찰…세계문화유산 공주 마곡사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의 경치가 뛰어나고, 가을에는 갑사의 풍경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마곡사 계곡 따라 형성된 봄 벚꽃길과 갑사 가는 가을 단풍길은 놓치기 아까운 힐링 산책코스여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갑사는 충남 공주 계룡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지만 고교 국어책에 실린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의 남매탑 이야기 덕분에 조금은 귀에 익은 곳이다.
‘춘(春) 마곡’에서 알 수 있듯이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423m)은 봄에 생기가 움트는 나무들과 봄꽃들이 아름다움을 들어내는 곳이다. 마곡사는 특히 정감록이나 택리지에 몸을 보전할 땅 10군데, 즉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으로 선정될 정도로 손꼽히는 명당자리이기도 하다.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마곡사 뒤편의 작은 봉우리 군왕대(220m)는 임금이 나올만한 명당으로 알려져서,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를 찾았던 세조가 이곳에 올라 주변 지형을 보고 ‘만년토록 없어지지 않을 곳’이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은 물론 국군도 들어오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은둔의 사찰로도 제격이다. 그래서 백범 김구선생이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들어와 머물렀으나 세조가 찾아오자 또다시 방랑길을 택했던 장소다.
이달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의 ‘국제 선명상 대회’를 앞둔 가운데 마곡사 옆 한국문화 연수원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선명상 아카데미 템플이 진행되고 있다. 은둔의 사찰 마곡사로 간다.
충남 공주 태화산 동쪽 자락의 마곡사는 70여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다. 창건과 관련한 특이한 것은 기록상 640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신라승려 자장 율사(590~658년)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하는데, 당시 공주는 백제(660년에 멸망)가 통치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640년에 백제 승려가 창건했으나 멸망 후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중창한 것을 640년에 지었다고 와전됐거나, 고승인 자장율사가 백제에 방문했을 때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지원으로 창건됐을 수 있다.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했으나 또 다시 임진왜란과 1782년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기도 했다.
마곡사(麻谷寺)란 이름 때문에 이곳이 삼(麻)을 많이 심었던 지역일까 생각도 했는데 2가지 설이 있다. 자장율사가 절을 완공 후 설법할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신라 무선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 선사에게 배워서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마곡사는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 7곳 중 한 곳이 됐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마곡사는 태극 모양으로 휘어 흐르는 마곡천 때문에 남쪽지역(남원)과 북쪽지역(북원)으로 나뉜다. 북쪽은 오층석탑이 있는 마곡사 앞마당과 중심 건물인 대광보전이 있고 남쪽은 중심 건물이 영산전이며 그 중간에 해탈문과 천왕문이 자리하고 있다.
마곡사는 가장 높은 곳의 대웅보전(보물)이, 그 아래 앞마당 대광보전(보물)과 오층석탑(보물)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돼 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이며 1788년 재건한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바닥에는 갈참나무 껍질로 만든 자리를 깔아놓았고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으며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상은 동쪽을 바라보도록 했다. 배치 형태가 부석사 무량수전을 떠올리게 한다.
대광보전 앞 높이 8.4m 고려 후기의 오층석탑은 2층 기단과 5층 탑신의 일반적인 석탑 형식이지만 꼭대기 상륜부는 라마식 보탑처럼 금동보탑이 올려진 특이한 구조다. 고려 말 티베트 불교(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낙산사 칠층석탑 상륜부도 이와 비슷하다. 오층탑 2단 탑신에는 4면에 각기 부처상들이 조각돼 있어 자연스레 탑돌이를 하게 됐다.
마곡사 높은 언덕의 조선 후기 목조건물 대웅보전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하나의 공간인 통층 건물이다. 외부는 연꽃과 봉황머리를 조각해 장식했으며 내부에는 높은 싸리나무 기둥이 층마루 없이 곧게 늘어서 있다.
이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기둥이 반질반질하다. 석가모니 부처와 양옆에 약사여래부처 아미타부처 등 삼세불이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고 있다. 현판은 신라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대웅보전 우측의 산방 대향각과 대광보전 우측의 스님들 일상생활하는 심검당은 담장으로 연결돼 있다. 그 아래에 완주 송광사 범종각과 닮은 열십자(+)형 팔작지붕 범종각과 남원과 북원을 가르는 극락교가 있다. 대광보전 왼편에는 김구선생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있다.
1896년 김구선생은 청년 시절 을미사변과 연관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살해(치하포사건)해 인천 옥사에 갇혔다가 1898년 3월에 탈옥해 도피 생활 중 마곡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은당이라는 승려를 은사 삼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했고 승려로 몇 달을 지냈다. 그때 거처가 지금의 소박하게 생긴 대광보전 왼편의 백범당이다.
그래서 마곡사는 임시정부 초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유적들과 마곡천 옆 삭발 바위와 징검다리 등을 잇는 백범 명상길을 조성해 놨다.
“사제 호덕삼이 머리털을 깎는 칼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 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고 ‘백범일지’에 기록하고 있다.
김구 선생은 수사망도 좁혀지고 승려 생활도 하은당에게 구박만 당하는 등 영 좋지 못하자 금강산으로 가서 더 큰 가르침을 받겠다는 핑계로 여섯 달 만에 절을 떠났다. 오늘날에도 ‘사람과 짐승 사이에 낀 것이 행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다.
백범일지에 의하면 “하은당은 툭하면 승려들을 갈궈대서 환속하는 경우가 많았고 백범에게는 얼굴 가지고도 갈궜다”고 할 정도로 김구 선생이 출가한 뒤 행자 생활은 즐겁지 않았던 듯하다. 그 뒤 백범은 부모의 설득에 의해 환속했고, 농촌 계몽운동을 거쳐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1946년, 김구 선생이 마곡사를 다시 찾아 “사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기상으로 나를 환영하여 주나, 48년 전의 승려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라고 회고하며 경내에 무궁화와 향나무를 심었고 그 향나무가 백범당 앞에 있다. 백범당에는 김구 선생이 생전 즐겨 쓰던 휘호도 걸려 있다. 휴정 서산대사의 선시로, 김구 선생의 손자가 마곡사에 기증했다.
불수호란행(不須湖亂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마곡사 경내 뒤편 성보박물관 앞 마곡천 징검다리의 시원한 물살이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바로 그 곳 앞에 백범 김구 선생이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했던 삭발바위가 있다.
세조의 단종 폐위에 항거해 모든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전국을 유람했던 생육신 김시습이 세조를 만난다는 것은 불편한 상황이다. 해탈문 좌측엔 영산전(보물)과 매화당이 마주보고 있는데 세조와 김시습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마곡사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영산전 현판은 세조가 써서 남겼고, 매화당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김시습은 광화문에서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장례를 치른 뒤 이곳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다시 방랑길을 떠난다. 세조는 “김시습이 나를 버렸으니 가마를 타고 갈 수 없다”며 두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석가모니 부처와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는 곳이다. 그러나 마곡사 영산전은 석가모니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 일곱 부처인 과거 칠불이 있고 그 주위에 천불(千佛)이 있다.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의 조선 중기 목조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영산전에서 우측으로 돌아 언덕길을 오르면 신라~고려 시대 최고의 승려인 국사들의 영정을 모신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을 지나 10여분 더 언덕을 오르면 조그만 봉우리를 마주하게 되는데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왔다가 최고의 자리라고 했던 군왕대(君王垈)다.
자칫 지나칠 뻔 했는데, 올라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다. 군왕대는 임금이 나올만한 명당이다. 하지만 이곳에 묘를 쓰면 마곡사가 망한다고 해 사람들이 몰래 묘를 쓰면 마곡사 스님들이 다시 파냈다고 한다. 그 기운을 듬뿍 받고 내려간다. 군왕대의 기운이 바로 아래 영산전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했다.
마곡사 가는 길은 상가 주차장에서 1.2㎞ 완만한 경사에 좌측에는 울창한 숲이, 우측에는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힐링 산책로다. 다루정(찻집)이 보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곡사’ 표지석과 함께 여기서부터 절집이다.
보현 및 문수동자상이 있는 해탈문을 지나면 돌탑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곧바로 최근 보물이 된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넘어가면 북쪽 지대로 들어가는 극락교를 마주한다. 해탈문 좌측으로 영산전과 매월당이 있고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 건너기 전 좌측으로 올라가면 산신각과 군왕대를 갈 수 있다.
마곡사 가는 또 다른 뒷길도 있다. 한국문화 연수원에서 마곡천 따라 8분정도 걸어가면 성보박물관과 그 건너편 김구의 삭발바위가 나온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마곡천 징검다리도 나온다. 마곡천 시원한 냇가 그늘 징검다리를 건너니 마곡사 솔바람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1코스 백범길(3㎞, 50분), 2코스 명상 산책길 (트레킹코스 7.1㎞, 150분), 3코스 송림숲길(등산 풀코스 10㎞, 230분) 등 백범 명상길로 이름 붙인 세 코스가 있다. 바로 올라가니 북쪽 지역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어내고, 고찰을 둘러 보며 역사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곳이 마곡사다. 김구선생 삭발바위 옆에 쓰인 이런 글귀가 들어온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mss@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요즘 날씨 너무 좋죠?” 곧 태풍 온다…여름보다 더 독한 가을 [지구, 뭐래?]
- 손흥민 "토트넘 재계약 협상 없었다"…1년 연장 옵션 가능성
- “줄게, 오물 다 줄게” 北김여정, 조현아 뺨치는 무대…딥페이크 어디까지?
- 이세영 "납치될까 봐 아역 데뷔…절친이 안티 카페 만들어"
- “4억 안 받아”…관중이 가져간 오타니 50-50 홈런공, 결국 경매에
- 장근석 암 투병기 공개…"암이라는 단어의 공포감 상당"
- 배우 김지은, 순직 소방공무원을 위해 기부금 5천만 원 기부
- ‘이나은 옹호 논란’ 곽튜브, 후폭풍 끝났나?…지구마블3·세계기사식당3 ‘하차’ 안해
- “아빠”라 부르던 동거男을 죽였다…20대 지적장애인, 정신병원서 시작된 ‘악연’
- 홍명보 "감독직은 마지막 봉사"에 팬들 뿔났다…"20억 받는 봉사도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