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으르렁 아닌가요" 포즈부터 다시 잡는 신인이 있다, 지명 순간 가슴 벅찼던 이유는? [현장 인터뷰]
인터뷰 후 의례적으로 파이팅 포즈를 요구하던 기자도 '아차' 싶었다. 광주일고의 많은 선생님이 예뻐했던 선수답게 삼성 라이온즈 신인 권현우(18)는 똑 부러지면서도 배려심이 넘쳤다.
권현우는 25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가진 전국체전 대비 훈련을 앞두고 스타뉴스와 만나 "솔직히 삼성에서 뽑아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 많이 보러온 팀들이 계셔서 약간 의외였다"고 지명 당시 소감을 전했다.
지난 11일 삼성은 2025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전체 43번으로 광주일고 우완 권현우를 지명했다. 권현우는 키 190㎝ 몸무게 90㎏의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최고 시속 150㎞ 빠른 공이 주 무기로 스플리터, 스위퍼, 커브를 던진다. 고교 통산 23경기 3승 2패 평균자책점 2.29, 58⅔이닝 37사사구(26볼넷, 11몸에 맞는 볼) 62탈삼진을 기록했다.
연고지도 아닌데다 자주 보러오던 팀도 아니었지만, 지명 순간 권현우는 가슴이 벅찬 감정을 느꼈다. 올해 삼성에 합류한 박병호(38) 때문이었다.
권현우는 "뽑히자마자 박병호 선배님부터 생각났다. 내가 사실 투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박병호 선배님을 진짜 좋아했다.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 친구한테서 사인 공을 받아올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어릴 때부터 보던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된다니 굉장히 신기했다. 초등학교 때 박병호 선배님이 시원시원하게 배트를 돌리시는 걸 보면서 타자도 하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사실 권현우는 5라운드까지 밀릴 선수는 아니었다. 올해 2월 전국 명문고 야구 열전 때까지만 해도 상위 라운드 지명이 예상됐고, 2학년 때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직접 체크하러 오기도 했다. 하지만 3학년 주말리그 시작 하루 전 찾아온 어깨 통증이 아쉬웠다. 광주일고 조윤채 감독은 더 큰 부상을 염려해 전반기 주말리그에 권현우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이에 권현우는 "어깨 염증 소견이 나왔다. 완치가 안 됐는데 빨리 던지고 싶어서 훈련하다 보니 재활이 조금 길어졌다"고 답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스플리터,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데 3개 다 자신이 있다. 커브는 스트라이크를 잡고 싶을 때 활용하고, 스플리터는 위닝샷으로 자신 있다. 그리고 슬라이더는 언제 어느 순간이든 다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 KBO 구단 관계자는 권현우의 슬라이더를 스위퍼로 분류하며 높이 평가했다. 스리쿼터 투구폼에서 나오는 팔의 궤적과 옆으로 크게 휘는 스위퍼가 매력적이라는 평. 이 스위퍼가 올해 초 친구에게 배운 급조된 구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권현우는 "우리 학교에 (이)서정이가 슬라이더를 스위퍼처럼 던진다. 헛스윙도 많이 나와서 올해 초에 배웠다. 구종 습득에 있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손 감각은 있는 편인데다 팔 위치가 높지 않아서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24)의 이름을 꺼냈다. 원태인은 KBO 리그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우완 투수다. 그 체인지업을 배워 선발 투수로 거듭나는 것이 꿈이었다. 권현우는 "선발로서 롤모델이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선수다. KBO에서는 원태인 선수를 좋아한다. 원태인 선수 체인지업이 정말 좋다고 느껴서 배워보고 싶다"며 "프로에 가면 선발 투수가 목표다. 쉽게 땅볼 유도를 하면서 이닝을 길게 가져가는 내 장점도 선발에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어 "원래는 박병호 선수를 타자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같은 팀이 됐으니 김도영(KIA) 선수와 강백호(KT) 선수를 상대해 보고 싶다. 만나면 빼지 않고 신인답게 자신감 있게 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1년 스카우트 경력의 조윤채 감독이 "이런 선수는 처음이다. 완벽하다"고 극찬한 품성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조윤채 감독에 따르면 야구부에서는 항상 늦게까지 후배들을 챙긴 선수였다. 이에 권현우는 "올해 초에 1학년들이 학교 분위기에 잘 적응 못하고 당황할 때가 있었다. 나도 1학년 때 그랬던 경험이 있다 보니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금방 학교에 녹아들 수 있게 하는 선배가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일반 교과 선생님들에게 야구부 권현우가 아닌 '학생 권현우'는 책 읽는 소년이었다. 권현우는 "공부는 잘하지 못하는데 책은 자주 읽는다. 스포츠 관련 책을 자주 읽는데 자기 계발서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이기는 습관', '인간은 어떻게 움직임을 배우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 책에서 읽은 것들이 도움이 됐다"면서 "학교에서 다독상 은상도 받았다. 물론 (김)태현이 형도 받은 적 있고 다른 친구들도 많이 읽는다. 서로 읽다가 재미있으면 추천해주기도 한다"고 깨알 같은 자랑도 잊지 않았다.
특유의 친화력은 선생님들과 야구장 나들이로 이어졌다. KIA는 24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삼성과 정규시즌 최종전을 치렀고, 권현우는 몰래 온 손님이었다. 올해 롯데 1라운드 전체 4번으로 지명된 김태현(19)과 함께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28일 예정된 신인 선수 입단식에 앞서 삼성 경기를 보러 갔다.
권현우는 "사실 어제(24일) (김)태현 형이랑 같이 삼성 경기를 보러 갔다. 내가 간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서 구단에 따로 말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 두 분이 예전부터 같이 야구장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갔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1루 쪽에서 경기가 끝나고 선배님들이 인사하는 것까지 봤는데 나도 저기서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기서 KIA가 잘하긴 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는 또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내년 데뷔 시즌 목표도 이때 정했다. 내년엔 나도 가을야구에서 던지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광주=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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