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 레이서가 할퀸 칠레 아타카마 사막 지형문자

‘최소 1000년’ 사막의 역사책
오토바이·차량 바퀴자국 심각

어지러운 바퀴자국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고대인들이 그려놓은 지형문자들 위로 오토바이와 차량 바퀴 자국으로 보이는 흰 선들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덮여 있다. 아타카마 사막 재단 인스타그램 캡처

1000년 넘은 지형문자들이 있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이 레이싱 애호가들의 무분별한 운전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 중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25일 비오비오칠레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칠레 아타카마 사막 보존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비영리단체 ‘아타카마 사막 재단’은 타라파카주(州) 알토바랑코스 고고학 단지 내 사막지대의 지형문자들에 수많은 바퀴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에도 일부 장소에 바퀴 자국이 존재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현지 매체는 보도했다.

아타카마 사막은 강한 햇볕과 혹독한 환경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덕분에 고대인들의 메시지가 담긴 ‘거대 캔버스’가 유지돼 왔고 전 세계 학자들의 연구 소재가 됐다. 문제는 최근 들어 전 세계 수백 명의 레이서가 오프로드용 차량이나 버기, 오토바이 등을 타고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당국 허가를 받고 레이스를 펼치는데, 일부는 불법적인 경주도 진행하고 있다고 아타카마 사막 재단 측은 주장했다.

고고학자이자 아타카마 사막 재단 운영자인 곤살로 피멘텔은 “사막의 역사책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곳에서의 누적된 훼손은 너무 비극적”이라며 “영상을 봤을 때 믿을 수 없었는데, 최악은 피해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타카마 사막 재단 SNS에 게시된 사진에 따르면 손상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존에는 동물, 사각형 등과 같은 지형문자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면, 최근 드론으로 찍은 영상에는 오토바이나 차량 바퀴 자국으로 보이는 흰 선들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덮여 있어 지형문자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역사학자들은 최소 1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산’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셀라 세풀베다 칠레 고고학회장은 고고학 단지 주변에 출입 금지 안내문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지형문자는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는 보지 못했다고 우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칠레 정부가 지형문자 훼손에 관여한 이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이종혜 기자 ljh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