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래 상대방 모르는 당근에서 중고차·부동산 거래 늘자, 압수수색 집행도 4배 증가
올 초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 7억원짜리 빌라 매물 하나가 올라왔다. 집을 구하던 A씨는 적당한 크기, 가격이라 여겨 매도자 B씨와 접촉했다. 이 빌라는 다수의 금융권 가압류가 걸려 있었고 국세도 미납된 상태였다. 양측은 잔금 납부 시 이를 말소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A씨는 지난 3월 잔금을 치른 후 등기까지 마쳤다.
그런데 잔금을 치르기 전 이 빌라에는 또 다른 금융권 가압류가 등기됐다. B씨가 A씨에게 고지하지 않아 이를 알지 못한 채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잔금을 치르면서 이를 다시 살펴야 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B씨 말을 그대로 믿었다. A씨는 “당근을 통한 직거래였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인도 없었고, 잔금 날엔 일일이 가압류를 건 이들에게 돈을 직접 송금하다 보니 정신도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잔금을 납부하고 등기까지 완료했기 때문에 빌라에 들어온 채무를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A씨는 B씨를 사기죄로 고소한 상태다. 그러나 B씨가 “돌려줄 돈이 없고, 또 다른 가압류가 걸린 지 나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어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의 중고차, 부동산 등 고액 거래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한 가운데 사기도 극성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7월 당근에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된 건수는 지난해 1년보다 4배가량 늘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 수십억원 규모 거래가 늘면서 범죄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데, 주민등록 인증 등 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가입해 거래할 수 있는 당근 특성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더불어민주당) 윤종군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2년 84건이던 중고차 거래건수는 지난해 4만9869건으로 600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1~7월에만 4만4551건을 기록해 반년 만에 지난해 1년간 거래 건수에 근접했다. 부동산 거래 역시 2022년 7094건에서 2만3178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올해 1~7월은 3만4482건을 기록해 이미 지난해 1년간 거래를 뛰어넘었다. 2022년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호텔이 50억원에 당근에서 거래된 데 이어, 올해엔 35억9800만원의 논현동 브라이튼N아파트가 거래되기도 했다.
중고차, 부동산 등 고액 거래가 늘자 이를 노리는 사기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윤종군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이 중고차, 부동산 관련 수사를 위해 당근 측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경우는 지난해 9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1~7월엔 39건에 달했다. 중고차, 부동산 외 다른 물품까지 범위를 넓히면 년간 사기 발생 건수는 3000~5000건에 달한다. 사기 유형 대부분은 허위 매물을 올린 뒤 다른 매물을 팔거나, 입금을 받은 후 물건을 주지 않는 식이다.
문제는 중고차나 부동산의 경우 거래 규모가 큰데 비해 안전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근은 3900만명이 가입했고, 실제 이용자 수는 1900만명 가량이다. 그러나 별도의 주민등록 절차 확인 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는 구조다. 타인 명의 대포폰 등을 활용하면 거래 상대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사기가 발생해도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중고차의 경우 차량 소유주 이름을 확인하는 단계를 두고 있긴 하지만, 차량 소유주가 당근 판매자 명의와 일치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차량을 등록하는 게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지인 등 차를 올렸다는 식으로 판매하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경우 이런 장치도 없어 미끼 매물이 많고, A씨 경우처럼 부동산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끼리 거래할 경우 낭패를 볼 가능성도 크다.
업계에선 당근과 같은 중고 플랫폼을 통한 거래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유관성이 가장 높은 국토교통부는 직거래 플랫폼을 통한 거래를 별도로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다. 중고차 거래의 경우 플랫폼 별 거래 건수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거래되는 지도 모르는 데, 사기 발생 대처가 될 리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종군 의원은 “한 번 사기를 당하면 생활이 무너질 정도의 큰 금액인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주거권과 이동권을 책임지는 국토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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