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만 에펠탑 100여개 무게"

송광호 2024. 9. 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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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주범인가 빈자의 생명줄인가…신간 '쓰레기의 세계사'
독일 역사학자 "쓰레기는 역사를 비추는 거울"
산처럼 쓰레기로 뒤덮인 마닐라 스모키 산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청소부다. 아마도 고귀한 집안의 아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그간의 삶을 청소하듯, 쓰레기를 줍고 변기를 열심히 닦는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천국의 그림자'(1986) 주인공 나칸더도 청소부다. 그는 새벽바람을 맞으며 고된 일을 하다 마트 여직원을 사랑하게 되나, 그녀는 마트 고위 간부와 나칸더를 놓고 저울질한다.

에펠탑 [연합뉴스 자료사진]

독일과 핀란드의 거장 감독들인 벤더스와 카우리스마키는 청소부의 신산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벤더스는 쓸쓸하고, 고독한 중년 남성의 자아 성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가끔 청소부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카우리스마키는 더 노골적이다. '프롤레타리아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편인 '천국의 그림자'에서 청소부의 삶은 고독한 데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하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의 삶은 사회 밑바닥 언저리에서 맴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최근 출간된 '쓰레기의 세계사'(흐름출판)를 보면 청소부라는 직업에는 오랜 세월 동안 이른바 '사회적 낙인'이 찍혀있었다. 쓰레기와 배설물을 수거하는 청소부들은 대개 천민 취급을 받았다. 인도에선 카스트제도에도 끼지 못한 불가촉천민이었다. 일본에선 히닌(非人) 이라 불렸다. 인간도 아니라는 의미의 멸칭(蔑稱)이다. 그들은 정해진 구역에만 거주해야 했고, 시신 매장, 쓰레기 구덩이 비우기, 쓰레기 수거 등에 종사했다. 유럽에서도 18세기까지 행정당국은 거지·범죄자를 거리 청소부로 투입했다. 1970년대 좌파 도시사회학자들은 청소부를 마지막 프롤레타리아로 묘사했다.

마드리드의 쓰레기 청소부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청소부가 천한 직종으로 여겨진 이유는 청소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로 꼽혔기 때문이다. 1920년대 베를린 청소부는 20년 동안 일을 하고 나면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최대 85㎏까지 나가는 쓰레기통을 들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냄새나는 오물통을 들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교외나 매립지, 소각장으로 버리러 다녔다.

넝마 거래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독일 역사학자 로만 쾨스터가 쓴 '쓰레기의 세계사'는 인류와 함께한 쓰레기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쓰레기와 함께한 인류의 역사를 추적했다.

책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도 쓸모없다고 여긴 물건을 분류해서 버렸다. 고대 로마도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로마의 한 시인은 로마를 돼지우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13세기 이집트 카이로에선 골목 곳곳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대청소를 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몰린 대도시는 쓰레기를 도시 밖으로 버리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급속한 산업화가 이뤄진 19세기와 20세기에 쓰레기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매립지와 소각장 등에 버려진 쓰레기는 다이옥신을 포함해 각종 유해 물질을 발산하며 환경오염을 유발했다.

1920~2017년 베이징에서 배출된 쓰레기양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게다가 사람들이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는 질병을 부추겼다. 중세 유럽인은 요강에 싼 내용물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여름에 오물통을 열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벌레와 쥐가 튀어나왔다. 14세기에는 쥐에 있는 벼룩에서 페스트균이 퍼져나가 유럽인의 30%가량이 죽었다. 쓰레기는 흑사병 외에도 여러 역병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쓰레기가 인간에게 악영향만 미친 건 아니다.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쓰레기는 한때 '갈색 황금'이라 불렸다. 일본에선 배설물 거래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주로 수로나 물길로 배설물을 비교적 수월하게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 대도시 주민들도 1840년대까지 도시 쓰레기를 비료로 사용했다.

배설물을 담은 양동이를 나르는 여인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쓰레기는 마피아들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했다. 마피아들은 1970년대부터 북이탈리아의 독성 폐기물을 남이탈리아에서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필리핀에선 쓰레기 활용과 채굴권을 둘러싸고 폭력조직 간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민들도 쓰레기 거래에 나서기도 한다. 전 세계 수많은 지역에선 오늘날에도 넝마장수들이 활동한다. 토고의 넝마장수는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장은 생명줄이다."

재활용품을 찾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는 아이들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한쪽에선 버리고 다른 한쪽에선 줍지만, 버리는 쪽이 줍는 쪽을 압도한다. 인간이 버리고 이용한 쓰레기는 이제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2016년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양은 20억1천만t에 달한다. 우리가 매일 내놓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펠탑 100여개 무게에 달한다. 특단의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2050년 무렵이면 지금보다 75% 증가한 34억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인류는 쓰레기를 버려왔고, 앞으로도 버릴 것이다. 저자는 "삶에는 쓰레기가 따른다"며 "쓰레기는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고, 우리는 쓰레기와 생각 이상으로 가깝다"고 말한다.

김지현 옮김. 428쪽.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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