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 숨 쉬는 맛’…영국 요리사는 왜 사찰 두부에 반했나
두부는 서양에서 인기가 없다. 미국만 해도 1970년대 부실했던 채식의 상징처럼 떠올리는 이가 많다. 하지만 동양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만 해도 두부를 찌고 삶고 굽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먹는다. 중국도 마찬가지.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에 마파두부가 있다. 전분을 입힌 연두부를 튀긴 후 간장 소스를 뿌려 먹는 일본 음식 ‘아게다시 도후’는 이젠 우리 식탁에도 오를 정도로 아시아 국가에선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서양인에게 두부 음식은 여전히 낯설고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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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요리사 에밀 미네프(50)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에서 특별한 두부 요리를 맛봤다. 8월31일부터 8일간 백양사 천진암(정관 스님), 대전 영선사(법송 스님)에 이어 서울 진관사(계호 스님)를 방문하며 여러 종류의 사찰음식을 경험한 그다. 현란한 조리 기술, 화려한 접시, 푸아그라 같은 진귀한 식재료 등 서양 요리가 그간 추구해온 식문화 구축에 일조했던 그가 사찰음식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의 런던 캠퍼스 학과장인 그는 8년 전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사찰음식이 등장해 서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단순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수행식에서 소박한 미식의 영롱한 세계를 발견한 그는 매료되고 말았다. 그가 4년 전 교과 과정에 한국 사찰음식을 넣은 이유다. 대전 영선사 법송 스님이 정기적으로 영국에 가 수업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사찰음식의 본고장인 한국에서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맛은 땅의 기운을 반영하기 마련. 더구나 사찰음식의 근간은 식재료 본연의 성질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아닌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초청에 그가 흔쾌히 응한 이유다.
“계호 스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와 지혜의 음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셰프들은 식재료를 그저 자유롭게 사용하려고 하지,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재료에 대한 존경이 제게 감동을 주는군요.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거로 보였죠. 재료가 곧 자연이니까요.” 미네프가 이날 진관사 두부 요리를 체험하고 한 말이다. 그는 이어 “오늘 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우는 동안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순수한 마음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조선시대 후기 조포사로 지정된 진관사는 두부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조포사(造泡寺)는 왕실이나 국가 제사에 쓰이는 제수물품을 공급하던 절을 말한다. ‘조포사’의 ‘포’는 두부 포자다. 이름이 ‘조포’라고 해서 두부만 제공하는 건 아니었다. 당시 귀한 음식이었던 ‘두부’를 상징처럼 명칭에 넣은 것이다. 서울 봉은사, 봉국사, 흥천사와 수원 용주사, 여주 신륵사, 남양주 봉선사 등 35개 사찰이 조포사였다. 진관사는 다양한 사찰음식 강좌를 운영하는데, 그 중 ‘두부 만들기’도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두부를 먹었을까. 고려 말 학자 이색(1328~1396)의 시문집 ‘목은집’에 두부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다. 단백질 공급원이 마땅치 않던 시절, 두부야말로 귀한 음식이었다. 진관사는 수륙재(물과 육지에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례) 전수 사찰이기도 하다. 진관사 수륙재는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진관사 공양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계호 스님이다. 그는 60년 남짓 사찰음식으로 수행한 이다.
“사찰음식은 수행식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먹는 음식이죠. 통상 음식은 문화라고 하는데, 사찰음식은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음식입니다.” 이날 계호 스님은 사찰음식의 의미를 설파하며 ‘증포’(두부찜)와 두부 조림 등을 선보였다.
납작한 증포엔 미나리로 꾸민 글자가 보였다. 영문 ‘Happy’. 그 사이에 꽃잎처럼 흩뿌려진 잣도 있었다. ‘해피’는 계호 스님이 미네프의 요리 삶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자다. 이어 미네프의 송편 빚기 도전이 이어졌다. “만두는 속을 먹고 송편은 겉은 먹는다고 하잖아요. 왼손에 (반죽을) 딱 올려놓으시고, 이렇게 펴고 콩을 넣으면 됩니다.” 계호 스님의 친절한 설명에 미네프는 생전 처음 해보는 ‘송편 빚기’에 땀을 흘려가며 모양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스님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거 같아요.” 미네프의 소심한 말에 이날 행사에 참여한 진관사 주지 스님인 법해 스님과 응성 스님, 선우 스님 등이 박장대소했다. 음식은 서로를 잇는다. 다름을 하나로 만든다. 타인을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
계호 스님과 미네프는 함께 맷돌에 콩도 갈았다. 사찰음식 체험은 진관사가 운영하는 한문화체험관에서 이어졌다. 외부 인사들이 공양하는 공간이다. 진관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내 질 바이든 여사 등 수많은 국빈 방문객을 맞아 공양을 차렸다. 16가지가 넘는 공양이 미네프 일행을 기다렸다.
진관사 된장으로 맛을 낸 된장국은 콩 발효 시간을 담은 우아한 맛이었다. ‘참죽나물(가죽나물) 부각’은 바삭바삭한 식감도 일품인데, 입에 넣으면 더 풍미가 그윽해 반하고 만다. 양념을 잘한 가지 요리는 부드러운 정도가 티라미수 같다. 잘 무친 여러 종류의 나물은 자연을 오롯이 담았다. 미네프는 계호 스님이 한 말을 새겼다. “욕심내는 마음과 성을 내는 마음을 음식에 담으면 안 됩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과 인격을 만들기 때문이죠.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몸이 완성됩니다. ‘마음을 담은 자연 음식’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맛’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관사 두부 요리 만드는 법
■ 오색두부조림
재료: 두부 1모(500g), 표고버섯 4개, 당근 1/3개, 애호박 1/3개, 붉은 고추 3개, 간장 3T, 채수(채소 우린 물) 3T, 조청 2T, 참깨, 참기름, 식용유
① 씻은 두부의 물기를 제거한다.
② 두부를 3㎝ 두께로 자르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③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볶은 후 간장, 참깨, 참기름으로 간을 맞춘다.
④ 당근과 애호박을 잘게 썰어 볶는다.
⑤ 홍고추도 잘게 자른다.
⑥ 구운 두부 가운데를 자르고 볶은 재료를 넣는다.
⑦ 간장, 조청을 채수에 넣고 끓인 후 두부를 넣어 졸인다.
■ 두부찜
재료: 두부 1모(500g), 석이버섯 10g, 미나리 40g, 잣 30g, 참깨 2T, 참깨 기름 2T, 죽염(소금)
① 면 보자기로 두부를 싼 후 물기를 없앤다.
② 으깬 두부에 참깨, 참깨 기름을 넣고 섞은 후 소금으로 맛을 낸다.
③ 석이버섯은 따뜻한 물에 담가 부드럽게 불려 물기를 빼고 딱딱한 부분을 자른 다음 끓는 물에 데친다. 먹기 좋게 자른다.
④ 씻은 미나리는 줄기를 데친 다음 버섯과 같은 길이로 자른다.
⑤ 면 보자기를 찜솥에 깔고 ②를 넣어 익힌다. 김이 나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 ③과 ④, 잣을 두부 위에 올려놓는다. 불을 끈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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