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금기어인 기업에서 안전한 일터는 없다 [왜냐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물류 작업의 자동화 추진' '개선된 구조의 웨이퍼 박스 도입' 등 새로운 사내 안전보건 관련 사업들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올해 3월, 삼성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시민단체와 함께 '삼성-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며 삼성 노동자들의 수면장애, 우울증세 등이 심각한 수준임을 밝히자, 삼성은 곧바로 "명백히 사실을 왜곡한 허위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자운 | 변호사·전 반올림 상근활동가
지난달 삼성전자가 ‘물류 작업의 자동화 추진’ ‘개선된 구조의 웨이퍼 박스 도입’ 등 새로운 사내 안전보건 관련 사업들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같은 날 수십개의 기사가 쏟아졌고, 며칠 후 한겨레에도 삼성의 조치를 환영하는 기고가 실렸다(한겨레 8월20일치 25면).
시민단체 ‘반올림’의 전직 상근 활동가로서, 그리고 수십 건의 삼성 직업병 소송을 대리해왔던 변호사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 자체로는 반가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과의 협력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문제에서 노조가 왜 중요할까. 산업 현장에는 다양한 위험 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생산기술과 설비, 취급 물질 등이 달라지면 사고 발생 원인과 양상도 변한다. 그러한 다양성과 복잡성, 가변성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는 더 두드러진다. 그러한 사업장에서 사업주가 주관하는 하향식 안전보건 관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위험에 가장 가깝고 또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는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럴 힘(권리)이 그들에게 있어야 한다. 그 권리를 쟁취하고 구현하려면 단단한 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때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반노조' 기업이었다. 조합원에 대한 미행과 감시, 징계와 해고, 고소 남발, 경찰을 매수한 시신 탈취까지 노조 파괴 범죄라 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짓을 삼성이 했었다. 그 범죄를 주도한 임원들이 구속되기도 했고, 해당 조합원과 노조에 수천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그러한 범죄 행각들이 드러나고 나서야 이재용 회장은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2020년 5월).
과거 삼성이 주창했던 무노조 경영은 그 자체로 불법 경영이었지만, 안전보건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상징하는 독단과 경직성이 문제 된다. ‘노조’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도 못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생산성에 반하는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몸으로는 느끼지만 그 실체는 알 수 없었던 위험에 대해 따져 묻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독성 물질과 위험 설비가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생명안전 문제와 관련하여 마땅히 존재해야 했던 긴장 관계가 삼성 반도체 공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공장에서 유독 직업병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과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반올림은 오래전부터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1급 발암 요인”이라고 지적해 왔다.
이제는 삼성에도 노동조합이 있지만, 노조를 대하는 삼성의 태도가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안전보건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올해 3월, 삼성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시민단체와 함께 ‘삼성-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며 삼성 노동자들의 수면장애, 우울증세 등이 심각한 수준임을 밝히자, 삼성은 곧바로 “명백히 사실을 왜곡한 허위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지난달 전삼노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삼성전자 전 사업장에 대한 위험성 평가 자료, 산재 현황, 작업환경 측정 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삼성은 아직 합당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일 여러 언론사가 반올림을 비난하는 기사를 일제히 게재했다. 반올림이 전삼노와 노동건강권 사업을 함께하는 것이 2018년 11월 반올림-삼성이 맺은 “사회적 합의(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관한 중재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이라고 썼다. 그 중재합의 내용과 전혀 맞지 않는 비난이었고 ‘사회적 합의’ ‘시민단체’ 등에 대한 참담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기사들이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을 여전히 적대하는 삼성의 인식이 그 기사들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다. 나는 삼성전자 사업장이 과거보다 안전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언컨대 노조를 적대하는 삼성에서 안전한 일터는 없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비판 체코 기사’ 뜨자마자, 한국대사관이 전화기 들었다
- [단독] 부라보콘의 ‘콘’ 바뀌었는데, 왜 공정위가 ‘칼’ 뽑았나
- 이스라엘군 “작전 새 단계 진입”…레바논 지상전 시사
- 이재명 “임종석 ‘두 국가론’ 당 입장 아냐…헌법상 한 영토”
- 아이유·임영웅으로 수십억 번 상암경기장, 잔디엔 고작 2.5억
- 검, ‘김 여사 무혐의’ 질주하다 삐끗…‘윤 대통령 부부 처분’ 답해야
-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의혹 뭉개자…내부고발자 ‘공개 투쟁’
- “의료계, 블랙리스트 피의자를 열사로 둔갑” 응급의학 교수 실명 비판
- 김대중재단, 26일 ‘DJ 동교동 자택’ 재매입 협약 체결
- 검찰, 김건희-이종호 주가조작 수사 개시에 ‘수십차례 연락 기록’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