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역경에서 브랜드를 지키는 선택, 모터스포츠

서울경제 오토랩 김학수 기자 2024. 9. 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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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위기 속에서 반전을 이끈 모터스포츠의 활약
혼다, 마쯔다는 물론 여러 브랜드들이 입증해온 역사
토요타, '젊은 소비자' 유도를 위해 모터스포츠 분전
2024 FIA WEC 후지 6시간 내구 레이스 결승 스타트 장면. 김학수 기자
[서울경제] 국내의 여러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있어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자동차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경험할 수 있고, 보다 긴 자동차 산업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과 같다.

더불어 다양한 브랜드들의 ‘매력’ 역시 경험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하다.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가장 큰 지배력을 과시하는 토요타(Toyota)를 비롯해 혼다(Honda)와 닛산(Nissan) 등과 같은 ‘범용적인 브랜드’들은 물론이고 독특한 매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크고 작은 브랜드’ 역시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 김학수 기자
이외에도 자동차 산업 전반, 즉 튜닝과 부품 산업 부분에서도 거대한 규모, 그리고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고, 각 브랜드들 역시 이러한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풍성한 매력이 가득한 ‘자동차 테마 파크’와 같은 나라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브랜드들의 적극적인 모터스포츠 참여는 단순히 ‘자동차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이동수단으로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마저도 팬으로 만들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는 모습으로 ‘브랜드 활동의 긍정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1960년대,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개성'을 앞세운 발전을 이뤄냈다.
1960년대 일본 정부가 꺼내든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다소 기이한 행보를 보이며 브랜드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실제 지난 1960년대, 일본은 전쟁 이후 ‘성장’을 이어가던 중 ‘수입차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을 예고하며 당대 일본 브랜드들의 통합 및 강제 폐지 계획을 밝혔다. 이는 ‘자동차 산업에 도전하는 신진 브랜드’에게 최악의 소식이었다.

마쯔다, 혼다 등의 작은 제조사들은 토요타, 닛산의 통합될 우려가 있었다.
당시에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규모를 갖췄던 토요타, 닛산 등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막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혼다, 마쯔다(당시 동양공업) 등의 소규모 브랜드들은 토요타, 닛산에게 강제적으로 흡수, 브랜드가 없어질 우려에 놓은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입차 브랜드들의 공세’로 인해 국산 브랜드가 위기를 겪기 전에 소수의 거대한 자국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이해될 일이었다. 다만 ‘기업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강제적이라는 부분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혼다는 F1 무대에 진출, 브랜드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학수 기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F1 도전에 나서는 혼다

모터사이클을 비롯해 자동차 관련 부분에서의 간접적인 경험을 쌓아 이제 막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혼다 입장에서는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는 최악의 장벽이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을 파쇄할 수 있는 ‘타개책’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리고 혼다는 이내 당대 최고의 모터스포츠 대회이자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며 많은 팬들을 이끄는 모터스포츠 대회, ‘F1’에 출전하기로 결정한다. 자동차 시장 진출 2년 만에 F1 출전 선언 자체는 물론이고 ‘일본 브랜드의 F1 도전’은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에 전시된 혼다의 F1 레이스카와 모터사이클. 김학수 기자
V12 1.5L 엔진을 탑재한 RA271를 앞세운 혼다의 F1 활동은 말 그대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일본 브랜드 최초의 출전은 물론이고 대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섀시와 엔진을 모두 자체 제작, 공급하는 팀이었기에 더욱 쉽지 않은 행보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대로 이러한 노력은 성과를 맺었다. 실제 1965년, 혼다는 첫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서 혼다, 일본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쾌거를 누렸다. 이러한 성과는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에서 혼다의 생존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혼다의 F1 출전, 그리고 승리의 성과와 별개로 ‘자동차산업합리화정책’는 계획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로터리 엔진은 마쯔다에게 축복이자 '저주'와 같았다.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선택

1975년,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마쯔다(Mazda)는 위기를 맞이했다. 오일쇼크로 인해 로터리 엔진이 탑재된 차량들의 실적이 하락했고, 브랜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 및 비용 절감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터리 엔진의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40% 효율성 개선을 이뤄낸 RE-12A 엔진을 개발했다. 마쯔다는 이 엔진을 탑재한 1세대 RX-7를 선보이며 ‘오일쇼크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오일쇼크를 마주한 로터리 엔진은 위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쯔다의 테라다 요지로는 새로운 로터리 엔진과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위해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을 요청했다. 당시 스미모토 은행에 관리를 받고 있던 마쯔다의 경영 상황으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과 같았다.

결국 몇 번의 시즌은 테라다 요지로 및 일부 직원들이 제한적인 지원 및 자비 마련 등으로 소소한 규모로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엔트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힘든 도전’에 나서서 말 그대로 ‘분전’했지만 포디엄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마쯔다는 결국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정복이라는 목표를브랜드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천 명의 직원들이 참여,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위한 로터리 엔진과 레이스카’를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 내에 전시된 마쯔다 787B. 김학수 기자
787의 등장, 그리고 르망 정점에 오르다

브랜드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전환된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이었지만 정상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제 RX-7를 기반으로 한 GTP 레이스카는 물론이고 717C, 727C 는 물론이고 767까지도 만족스러운 성과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1990년, 당대 최신의 R26B 로터리 엔진을 앞세워 700마력의 성능을 내는 787를 앞세워 재도전에 나섰지만 다시 한 번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더불어 1992년부터는 ‘로터리 엔진’을 사용할 수 없는 대회 규정으로 인해 ‘1991년’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787B에 탑재됐던 레이스 사양의 로터리 엔진. 김학수 기자
1991년, 마쯔다는 세 대의 787B, 두 대의 787(개량 사양)를 앞세워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출전한다. 경기 초기에는 C2 클래스의 레이스카들이 앞서는 모습이었지만 내구성 및 효율성을 앞세운 마쯔다 진영의 ‘반격’이 펼쳐졌다. 특히 마치 스프린트 레이스하듯 공격적인 주행은 ‘경쟁자’에게 부담이 됐다.

결국 선두로 달리던 메르세데스-벤츠 C11이 과열로 인해 피트인하며 787B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레이스 시작부터 끝가지 우수한 신뢰성을 자랑한 787B는 결국 선두에 오르고,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는 주행으로 체커를 받았다.

타 브랜드인 '토요타'마저 경의를 표하는 마쯔다 787B. 김학수 기자
이를 통해 마쯔다는 브랜드 출범 최초, 그리고 아시아 및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로도 최초인 르망 24시간 종합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징과 같은 ‘로터리 엔진’의 가치를 재 입증하며 그 계보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올해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는 모든 브랜드들의 역량과 노력이 담겼다.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브랜드의 권리이자 의무’

과거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한 임원은 인터뷰를 통해 ‘모터스포츠 활동’에 대해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브랜드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라며 “큰 비용이 들지만 모터스포츠 참여를 통해 브랜드가 얻게 될 수 있는 이점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국가의 정책을 타파하기 위한 혼다의 F1 출전과 승리의 기록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긴장시켰던 오일쇼크로 인해 ‘브랜드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던 순간, 이를 타파한 마쯔다의 노력과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의 도전은 이러한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과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브랜드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경제 오토랩 김학수 기자 autolab@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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