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의사캐슬' 임금님은 무능해서 용감했나

강윤주 2024. 9. 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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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수술실에서, 지방에서 진작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강남 거리마다 성형외과·피부과가 수두룩하고 초등 의대반부터 목매며 의사가 되겠다고 난리지만 정작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의사들은 멸종당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 의사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을 구급차 뺑뺑이는 의료 선진국의 뒤틀린 민낯을 드러낸 일부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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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오매불망 기다린 지도 7개월째. 그러나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수술실에서, 지방에서 진작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강남 거리마다 성형외과·피부과가 수두룩하고 초등 의대반부터 목매며 의사가 되겠다고 난리지만 정작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의사들은 멸종당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 의사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을 구급차 뺑뺑이는 의료 선진국의 뒤틀린 민낯을 드러낸 일부 사례일 뿐이다.

현실로도, 수치로도 대한민국 의사는 부족하다. 생명과 직결된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필수과 의사는 더 부족하다. 돈은 안 되는데 몸은 고달프고 사람 못 살리면 고소까지 당하니 못 버티고 떠난다. 지방은 더 씨가 마른다. 연봉 수억 원을 준다 해도 오지 않는다. 지난해 의료 개혁을 취재하며 만난 'MZ 의사'는 맑은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사명감이 밥 먹여 주나요?" "기자님은 '시골'에 살 수 있어요?" 지방대 의대 차석 졸업자로 전도유망했던 의학도는 전문의 되기를 포기하고, 수도권 체인 미용 의원에서 보톡스 레이저 시술을 한다.

의사들을 욕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세상 똑똑한 그들은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했고, 각자의 합리가 모여 만든 비합리(필수·지역 의료 붕괴)가 한국 의료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악다구니 속에서 선의가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치가 할 일이지만 표 계산이 앞서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비겁했다. 의약분업에 반발하는 의사들을 달래고자, 20년 가까이 묶어둔 '의사캐슬(의대 정원 3058명)'은 그사이 더 공고해졌다.

누구도 못 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 당장 인기를 못 얻지만, 역사로부터 평가받고 싶다던 대통령의 결심을 그래서, 한때는 응원했었다. 의료개혁을 바라는 국민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년 사이 대통령은 의사보다 더 공공의 적이 됐다. 의지만 결연할 뿐, 이를 관철시킬 전략과 대책은 너무 순진했고 성급했다. 전형적인 아마추어다.

당장 목표와 수단이 전복됐다. 의사를 왜 늘려야 하나. 의료 불균형,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새 목표는 사라지고 의사 증원이란 수단만 남았다. 왜 2,000명인지 설명도 부족했거니와 무너져가는 필수·지역 의료를 살릴 충분한 복안이 없으니 밤새 수술실을 지키던 '참의사'들마저 등을 돌렸다. 4년 전 겪었던 전공의 파업에 똑같이 당하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병원을 못 나가게 붙잡아둘 최소한의 허들(개원 면허제·임상수련의제)이라도 미리 마련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선의를 몰라주는 데 대한 야속함만 큰 것 같다. 국민들에게 '병원 가봤냐'고 역정을 내고 이 엄중한 시국에 여당 대표와 기껏 만나 의료대란의 '의'자도 꺼내지 않고 밥만 먹고 헤어진 걸 보면 '밀릴 수 없다'는 오기만 느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통령만 달라지면 된다. 이제라도 의사들을 만나 의료개혁의 우군으로 동참시켜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제주까지 내려가 직접 식사 대접하며 의견을 구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도 고집만 피워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역사는 그걸 무능이라 불러왔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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