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펠라그라의 단서를 준 반려동물 ‘개’

경기일보 2024. 9.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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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

이 과정에서 개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개의 특별한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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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아태반추동물연구소 연구원∙농학박사

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 놀라 몸을 훑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큰 병이다 싶어 밖을 나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피부가 울긋불긋하다. 누군가는 침울하고 누군가는 혼잣말을 한다.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유명을 달리한 자 옆에 가족이 애처롭게 있다. 갑자기 뒤바뀐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다. 190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미국 남부는 옥수수 주 생산지이고 옥수수는 20세기 초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는 염증으로 피부염과 설사가 나타나고 치매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가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1907년부터 1940년까지 사망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됐다.

당시 미국 공중보건의 조지프 골드버거 박사는 농업지역, 요양병원, 보육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보고 전염병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치인, 자본가, 의사, 교사의 발병 수준이 낮은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펠라그라의 원인이 ‘비타민B3(니아신)’ 결핍임을 밝혀냈다. 부유층보다 고기, 우유,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서민들은 비타민B3 흡수율이 낮은 옥수수를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면 해결될 것 같던 펠라그라의 장막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러나 골드버거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서민을 살릴 차선책으로 비타민B3가 풍부한 저가형 식품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개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시 비타민B3 결핍 실험으로 개의 혀에 검은 점이 생기는 ‘흑설병(黑舌病)’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흑설병과 펠라그라의 유사성에 주목했고 이때 효모가 치료에 탁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결국 연구진은 빵을 만드는 효모를 대량 보급했고 이런 조치는 펠라그라 치료와 예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반려동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자로는 짝 반(伴), 짝 려(侶)자를 쓰며 영어로는 동반자를 뜻하는 ‘companion animals’로 삶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 같이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동반자라고 한다. 사람과 개가 공존한 역사는 오래됐다. 독일에서 발견된 1만4천년 전 개 화석은 함께한 시기를 가늠할 증거다. 최근 유전자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개의 역사를 4만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냥으로 도움을 주던 동반자는 현재 집지킴이, 경호견, 경찰군견, 구조견, 도우미견, 반려견으로 탈바꿈하며 사람과의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는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와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다. 개의 특별한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늘 그래왔듯 또다시 도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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