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스마트폰 부진에 찬바람… AI 덕에 칼바람은 없을 것”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반도체 부문)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약 8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자, 국내 반도체 산업이 4년간의 침체기를 끝내고 ‘반도체의 봄’을 맞았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미국 투자회사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겨울이 온다’는 제목의 보고서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곧 혹독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수요 감소, 대표적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공급 과잉으로 2026년까지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반도체 산업에 어떤 상황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또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업황은 괜찮을까? 현장을 잘 아는 기업 고위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상황을 진단해 봤다. 이들은 대체로 “미국·중국의 경기 부진으로 PC·스마트폰 수요가 줄면서 전통적인 D램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어두워졌지만, 데이터센터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덕분에 급격히 침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왜 반도체 겨울을 전망했나
①부진한 스마트폰·PC 수요
‘반도체 겨울론’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스마트폰·PC용 범용 D램의 부진이다. 매년 하반기 스마트폰 시장을 책임졌던 애플의 아이폰 신작(아이폰 16 시리즈)의 성적이 심상치 않다. 애플 분석 전문가인 궈밍치 TF인터내셔널 분석가는 “아이폰 16 시리즈의 사전 판매 주문량이 전작 대비 13% 감소한 3700만대에 그쳤다”고 전했다. 특히 세계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침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시장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 반등하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PC가 덜 팔려 제조사들이 지난해까지 쌓아둔 범용 D램 재고가 소진되지 않아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PC용 D램 가격(DDR4 8Gb)은 지난 5월 2.1달러로 정점을 찍고, 지난달 2.05달러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②중국 CXMT의 약진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물량 공세도 반도체 업황 부진의 근거로 거론된다. 메모리 자립을 꾀하는 중국은 자국 기업인 CXMT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CXMT의 중저가 D램은 중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스마트폰과 가전에 대거 탑재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내 판매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무라증권의 최근 보고서는 월 16만장에 달하는 CXMT의 D램 생산 능력(웨이퍼 기준)이 올해 말 20만장으로 증가하고, 내년에는 30만장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CXMT의 생산 확대로 인해 범용 D램인 DDR4는 이미 공급 과잉”이라고 했다. 스마트폰과 PC 제조사가 이미 상당한 재고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CXMT의 물량이 쏟아지면 범용 D램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③삼성전자 평택 공장 증설
삼성전자가 새로 짓는 평택 반도체 제4공장(P4)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4공장을 애초 D램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라인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로 최근 D램 전용 생산 라인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 제4공장에서 본격 양산이 시작되면, D램 공급 과잉은 더 심화될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은 오지 않을 것
①AI 수요는 견조
반도체 업황이 상반기 전망보다 밝진 않겠지만,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처럼 어둡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근거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가 계속되면서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HBM과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PC나 스마트폰의 수요가 예상보다 회복이 더딘 것은 맞지만, AI 서버에 주로 쓰이는 기업용 대용량 저장 장치(eSSD)와 AI 데이터센터용 첨단 메모리인 DDR5의 매출은 견조하다”고 했다.
특히 HBM에 대해 모건스탠리 보고서는 2025년쯤 HBM의 공급 과잉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HBM은 사전에 고객사와 물량이나 성능을 조율하는 ‘수주형 생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급 과잉 문제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실제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2025년까지 HBM 물량이 완판됐다. 예전에는 PC·스마트폰 수요가 줄면 곧바로 메모리 반도체가 큰 타격을 입는 사이클이었지만, 이번에는 AI 반도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이런 전통적인 사이클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②감산 효과 유지
지난해 극심한 불황기(다운사이클)를 맞으면서 2·3위 업체인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1위 업체인 삼성전자까지 감산에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가 나타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감산을 하면서 그동안의 재고가 해소되고,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경기의 영향을 받아 재고가 늘어날 순 있지만 예전과 같진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현재 D램과 낸드의 재고를 각각 62주, 67주로 추정했지만 반도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는 최대 30주를 넘지 않는다.
③“완만한 내림세”
반도체 업계 관계자와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반도체 업황은 하반기에 고점을 찍은 뒤 완만한 내림세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AI 거품론 때문에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용 첨단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도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메타 등 AI 개발 경쟁에 뛰어든 빅테크들은 AI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AI가 이끄는 반도체 수요 때문에 반도체 겨울이 예전처럼 혹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범용 D램과 HBM
모두 데이터를 읽고 쓰는 메모리 반도체 ‘D램’의 일종이다. 범용 D램은 스마트폰·PC 등 다양한 전자 기기에 널리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이뤄져 가격이 저렴하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D램을 여러 단 쌓아 만든 제품으로, 엔비디아 등 고성능 AI 반도체 업체가 주요 고객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격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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