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끌다 ‘여론’에 떠넘겨... 스스로 발목 잡은 검찰

이슬비 기자 2024. 9. 2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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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심의위 엇갈린 결론 파장
그래픽=양인성

검찰수사심의위(수사심의위)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한 두 차례 심의 결과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일 디올 백을 받은 김 여사에 대해선 ‘불기소’를, 지난 24일 공여자인 최재영씨는 ‘기소’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수수자와 공여자라는 차이는 있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청탁금지법’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두고 25일 검찰 안팎에서는 “같은 사건으로 다른 결론을 내놔 사회적 논란만 가중시켰다” “검찰 수뇌부가 여론 눈치를 보면서 사건을 질질 끌다가 ‘여론 재판’에 던진 것 아니냐” 등 비판들이 나왔다.

그래픽=양인성

◇“사건 처분을 여론에 따라 하나”

검찰 내부에서는 전날(24일) 수사심의위 결과를 두고 “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사건 처분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외부 인사들의 판단에 검찰이 휘둘리는 게 맞느냐” “앞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은 다 수사심의위에 회부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같은 사건을 두 차례나 수사심의위에 회부하면서 ‘일단 기소해서 법원 판단을 한번 받아보자’는 식으로 흘러갔다”라며 “수사심의위가 검찰에 오히려 독이 된 상황”이라고 했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와 기소가 적법했는지를 심의하는 기구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월 도입됐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 150~300명 중 무작위 추첨으로 15명을 선정해 추가 수사, 기소 여부 등을 심의한 다음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 결과를 수사팀에 권고한다. 도입 당시엔 검찰이 독점한 기소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검사만이 형사재판의 공소를 제기(기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사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법리대로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의 몫”이라며 “전임 총장이 김 여사 사건을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에 회부한 것부터가 ‘면피’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수사심의위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나왔다. 전날 수사심의위는 최재영씨에 대해 ‘8대7′ 의견으로 기소를 권고했는데, 위원 중 한 명만 다른 결정을 해도 1표 차이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번 바뀌는 위원 구성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런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있겠느냐”며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고, 눈치 보지 않아야 하는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결과다. 현행 제도대로 운영할 거면 차라리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여사 수사심의위 위원과 최씨 수사심의위 위원은 한 명도 겹치지 않았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전문가도 아닌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가 수사심의위에 회부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최씨는 김 여사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알려지자, 이에 반발해 수사심의위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가 “수사심의위에 부의해야 한다”고 결정해 두 번의 수사심의위가 열린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검찰, 김 여사·최씨 ‘무혐의’ 처분할 듯

수사심의위의 권고와는 별개로 ‘디올 백 수수’ 의혹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다음 주 중에 김 여사와 최씨 모두 무혐의 처분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심의위 권고는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없는 데다, 검찰은 디올 백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 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준 금품은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청탁금지법의 취지이고 판례”라고 했다.

앞서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사례도 여럿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의 경우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수사팀은 원래 의견대로 기소 처분을 했다. 또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의 경우,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수사팀은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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