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窓] 마에스트로의 잇따른 추락
우아한 줄만 알았던 클래식 음악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세계적 거장들을 둘러싼 추문과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은 영국 명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81)였다. 지난해 5월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지휘를 맡았던 거장이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프랑스에서 오페라 공연 직후 젊은 남자 성악가의 얼굴을 때린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다. 당시 가드너는 이 성악가가 무대에서 반대 방향으로 퇴장하는 모습을 보고 격분해서 폭행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다음은 프랑스 명지휘자 프랑수아 그자비에 로트(52)다. 지난 2003년 악단 ‘레 시에클’을 창단한 뒤 바로크음악부터 20세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지휘해서 세계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지난 5월 프랑스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는 로트가 단원들에게 특정 신체 부위를 촬영한 사진과 부적절한 문자를 보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폭로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로트는 지휘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벨기에 지휘자이자 건반 연주자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78)도 자신이 창단한 악단인 ‘아니마 에테르나’에서 해임됐다. 역시 “지속적인 공격적 행위와 계약 의무 위반”이 사유였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나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신이 창단하고 오랫동안 몸담았던 악단에서 이번 사태들이 터졌다는 점이다. 창립자가 악단의 수장이나 간판 역할을 장기간 맡다 보면 악단의 권한과 책임도 한 사람에게 집중될 공산이 높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고 권력 집중이 지속되다 보면 누적된 병폐가 터지는 건 예술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또한 이들이 창단한 음악 단체들은 기존 음악계에 대한 대안적 성격이 강했다. 빈 필하모닉이나 베를린 필 같은 기존 악단들이 ‘다수당’이나 ‘집권당’이었다면, 창단 초기에 이 단체들은 ‘원외 정당’이나 ‘소수당’에 가까웠다. 음악 연주와 운영 방식에서도 낡은 관행을 일소하는 신선한 파격을 선보였지만, 언젠가부터 기존 음악계 못지않은 패권적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폭군형 마에스트로(거장)’는 논란이 아니라 오히려 칭송의 대상이었다. 단원들과 난투극을 불사했던 이탈리아의 전설적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나 악단의 연주가 성에 차지 않으면 혹독한 지적을 퍼부었던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1996) 등이 대표적이다. 연주의 완성도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빼어난 음악성과 열정의 방증(傍證)으로 미화됐다. 하지만 모두 옛날이야기. 지금은 과거의 눈부신 업적이 현재의 일탈을 가려주지 않는 시대다. 마에스트로들의 추락은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라는 씁쓸하지만 당연한 교훈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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