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꺾인 파죽지세? K팝은 늘 위기였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4. 9. 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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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음악? 기껏 아시아? 창의성 없다?... 늘 돌파하며 성공신화
소속사와의 갈등·아이돌 감정노동 문제도 시스템으로 극복중
다시 한 번 위기론… 연습실과 온라인서 흘리는 ‘땀’을 기대하라
일러스트=이철원

K팝에서 위기와 비관은 일상이다. 동방신기를 둘러싼 소송은 기획사와 아티스트 간의 기존 관계가 지속 가능한지를 묻는 사건이었다. 아이돌들의 안타까운 죽음 또한 K팝 아티스트가 해야 하는 ‘감정 노동’이라는 성격을 드러내는 일들이었다. 2016년 사드 배치로 말미암은 중국의 한한령 조치로 수출 시장 환경이 급변했을 때도 위기는 찾아왔다. 자연스레 K팝의 성공에 물음표를 던지는 회의론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K팝은 기껏해야 아시아와 남미 정도에서나 제한적 인기를 구가하지, 문화의 중심인 서구권에서는 외면받는다고 무시했다. ‘아티스트의 창의성’ 대신에 ‘기업의 돈’으로 움직이며, ‘공장 음악’을 양산하는 K팝은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비관론도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K팝은 계속해서 성공 신화를 써나갔다.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소속사와 아티스트의 법적 분쟁, 아이돌의 정신적 곤경이 가시화되자 적절한 대응을 위한 체계와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수출의 위기는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해결했다. 일본 시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중국 시장을 열었고, 중국에서의 손실을 서구 시장에 진출하며 만회했다. 각 기획사는 업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자신들의 색깔을 갈고 닦으며 콘텐츠 고도화에 나섰다. 시각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K팝은 세계 각지의 전문가 네트워크를 주재하는 ‘돈맛’이 느껴지는 장르로 진화하며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얻어냈다. 이 성공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게 되자 K팝은 ‘한국의 저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갑작스러운 칭송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K팝에 위기론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중국 경기가 얼어붙으며 핵심 판로 중 하나가 휘청거렸고, 앨범 판매량도 감소했다. 시장과 자본 규모가 커진 만큼, 중소 기획사의 활동 공간이 급속히 사라져 K팝 생태계가 대형 기획사 체제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세계 시장에서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의 뒤를 잇는 초대형 아티스트 차원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력이 식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가장 큰 ‘폭탄’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사이의 분쟁이었다. 팬덤 간의 치열한 경쟁은 K팝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장막 뒤의 자본과 기획자까지 전면에 나서며 분쟁이 격화되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K팝은 이렇게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향할 것인가.

하지만 지금의 위기가 K팝이 최근 거둔 놀라운 성공에 원인을 두고 있음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K팝의 폭발적 성공의 일등공신은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야외 활동이 제약되고 원격 생활이 일상화되며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 속 K팝 아이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이 초고속 성장의 두 가지 측면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팬데믹 활황으로 K팝 생태계에는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가 찾아왔지만, 놀랍도록 변화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단계에 필요한 새로운 문법과 규칙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둘째, 팬데믹이 만들어낸 동력은 팬데믹 이후에는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야외 활동이 회복되며 아티스트가 콘서트를 다시 열 수 있게 되며 수익성은 개선되었지만, 온라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줄며 K팝 몰입도는 떨어졌다. 새로운 단계에 걸맞은 제도와 관행이 미비하여 산업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모두의 엄청난 기대를 모으던 K팝의 파죽지세는 꺾였으니, 모양새가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시대가 황금기일 수는 없다. 3세대 아이돌이 4세대로 교체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K팝이 본격적으로 글로벌로 뻗어 나간 2019~2022년의 시기는 당분간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저 시기는 숱한 우연이 겹쳐 일어난 화학적 반응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기론을 다시금 소리치며 과하게 비관하고 있을 이유도 없다. K팝 역사는 위기와 함께해온 역사였다. 게다가 지금의 위기는 예상치 못한 성공 이후 차분히 환경을 정돈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그러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온라인 공간의 한구석에서, 모처의 연습실에서 또 새로운 신화를 쓸 모멘텀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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