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시골 백인 미국인’이 좌우하는 美 대선
미국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州都)다. 오스틴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역시 오스틴이 아닌 휴스턴이다. 나머지 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지역에서 주도와 최대 도시가 다르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도농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균형 발전이 이뤄졌다면 작은 도시에 주 정부와 의회를 굳이 둘 필요가 없다. 또한 정보기술(IT)의 발달에도 도농 격차가 쉽게 해소되지 않으며 때론 기술 발달이 격차를 키운다는 점도 알려준다. ‘지방 소멸과 강남 불패의 주요 원인은 KTX 도입’이란 말이 있듯 983만 km²의 광대한 국토를 보유한 미국에서도 전국적으로는 일자리와 인프라가 풍부한 동서부 해안 대도시, 각 주 내에서는 최대 도시로 사람이 몰린다.
도농 격차는 대선에도 영향을 끼친다. 영국 시사매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6년 미 대선 당시 인구밀도 하위 20% 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득표율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보다 32%포인트 높았다. 2020년 대선 때도 해당 지역 내 트럼프 후보의 득표율은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35%포인트 앞섰다. 즉,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화가 덜 된 곳에 사는 미국인일수록 공화당 후보를 찍을 확률이 높고 그 경향성도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 농촌 유권자의 51%는 공화당, 45%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올 4월 기준 농촌 유권자의 60%는 공화당을 지지하나 민주당 지지자는 35%로 줄었다. 24년 전 6%포인트였던 양측 격차가 4배 이상 많은 25%포인트로 벌어졌다.
올 6월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농촌 유권자의 공화당 쏠림은 백인에게만 나타난다. 흑인과 라틴계는 거주 지역과 지지 정당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하지만 백인은 ‘시골 거주=공화당 지지’, ‘도시 거주=민주당 지지’가 뚜렷하다. 이 같은 현상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후보는 23일 하루에만 올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미스턴, 키태닝, 인디애나를 찾았다. 각각 2020년 기준 인구가 351명, 3921명, 1만4044명에 불과한 도시들이다.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주민조차 잘 모를 듯한 3곳을 괜히 누볐겠는가. 현재의 대선 방식으로는 스미스턴 주민 351명의 가치가 공화당 텃밭 텍사스주 주민 351만 명,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주 주민 351만 명에 맞먹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스미스턴은 인구의 99.1%가 백인이고 14.6%가 빈곤층인 전형적인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다. 천연가스로 운영되는 발전소도 있다. 과거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프래킹(Fracking·셰일가스 수압파쇄 추출법)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화석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말을 바꾼 비(非)백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곳이다.
소수 경합주의 시골에 사는 몇몇 유권자가 3억3000만 명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 대통령을 결정하는 듯한 모양새가 얼핏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다만 대선 체계를 바꾸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공화당은 현 체계가 유리하니 개정을 반대한다. 민주당 또한 농촌의 저소득 백인 유권자를 사로잡으려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비백인 인구가 훨씬 적었던 20세기의 선거에서는 마냥 불이익만 받은 것도 아니니 지금 와서 바꾸자고만 하긴 어렵다. 시골의 백인 미국인은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중 누구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지지할까. 정확히 4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승자가 여기에 달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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