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환자 ‘평균 92분 동안 14곳’ 뺑뺑이…34명 중 13명 숨졌다
100㎞ 넘는 거리 이동하거나
병원 92곳 거부, 사망 사례도
60대 최다, 10세 미만도 3명
1000명당 사망자·전원 수 ↑
응급 의료 위기, 수치로 확연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촉발된 의료 대란이 200일을 넘어섰다. 응급 환자들이 병원의 수용 불가 통보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급증하는 가운데 응급의료 체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지난 2월2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전말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례 34건을 분석한 결과 신고 이후 응급실에 도착해 최초 처치를 받기까지 1시간32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이 응급환자들은 평균 14.7회 이송을 거절당했다. 상당수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느라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의미다. 환자 13명은 결국 사망했는데 이 중 3명은 10대 미만이었다. 이송 시간이나 거절횟수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계산에서 제외했다.
환자들은 충북 청주에서 서울로, 강원 양구에서 강릉으로, 경남 함안에서 대구로 100㎞가 넘는 거리를 응급실을 찾아 이동했다. 겨우 응급실에 도착하더라도 수술이 불가능해 큰 병원을 찾는 도중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병명은 골절, 추락, 교통사고 등 외상에서부터 의식저하, 뇌졸중, 대동막박리 등 중증질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나이별로는 60대가 8명으로 가장 많았다. 10세 미만도 3명이나 됐다.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례는 나이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추석 연휴 때였던 지난 17일 오전 2시15분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선 의식 장애와 구토 증세를 보이던 30대 여성 A씨가 병원 92곳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한 끝에 4시간10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20대 여성 B씨는 지난 5일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학교 교정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지난 12일 숨졌다. 당시 B씨가 발견된 곳은 인근의 조선대병원 응급실로부터 약 100m 거리였지만, 해당 병원 의료진과 연락이 닿지 않자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B씨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
지난 3월30일 충북 보은군 보은읍에선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생후 33개월 여아가 3시간 동안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었다. 주택가 옆 1m 깊이 도랑에 빠졌던 아이는 19분 만에 보은한양병원으로 이송돼 의료진이 심폐소생술로 맥박을 살렸지만, 이후 병원 11곳으로부터 소아 중환자는 진료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고 구조된 지 3시간여 만에 숨졌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제출받은 ‘응급실 환자 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7월 응급실을 찾은 환자 수는 17%가량 줄었지만, 응급환자 1000명당 사망률은 6.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명보다 높아졌다. 응급실을 찾아 헤맨 환자를 일부 추정할 수 있는 1000명당 전원 환자 비율도 1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6명보다 0.9명 늘었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119구급대 재이송 건수 및 사유’ 자료를 보면 병원으로부터 두 번 이상 이송을 거부당한 횟수가 2023년에는 전체 84건이었던 반면, 올해는 8월20일까지 벌써 121건에 달했다. 3회 거부도 17건, 4회 거부도 23건으로 2023년의 해당 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1~4회 재이송 건수를 합하면 3597건으로, 2023년 전체 재이송 건수 4227건에 벌써 근접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사망 사례를 별도로 집계하지는 않고 있다.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선 의료대란 속 ‘응급실 뺑뺑이’ 34건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권정혁 기자 kjh0516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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