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공부 중

기자 2024. 9. 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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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읽었다. 여기에서 통사란 아플 통(痛), 곧 ‘한국의 아픈 역사’라는 뜻이다. 출간된 지 꽤 된 책이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있다가 최근 뉴라이트 논쟁을 계기로 다시 집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선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 정부가 나에게 역사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박은식은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했으며, 일찍이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지낸 분이다. 그가 쓴 <한국통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며, 그 안에 살아있는 표현이 가득하다.

이 책에 갑신정변과 관련,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일본에 의지하여 개혁을 꾀하던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말한다. “가히 아까운 일이다. 그러한 일류 재사(才士)가 일본인에게 팔려 그러한 큰일을 저질렀다”며, “저들 일본인이 어찌 다른 나라의 백성을 위하여 남의 아름다운 덕을 진실로 도와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겠는가. 우리의 진보는 저들에게는 불리한 것이므로 우리에게 진보하려는 기세가 있을 것 같으면 저들은 반드시 온갖 방법으로 해치려 들 것이요, 도와주려고 하겠는가. 우리의 젊고 영민한 선비들은 이것을 살피지 않고 저들에 의지해서 일을 이루려 하다가 그 꾐에 무너져 함정에 빠지게 되니 또한 애석하지 아니한가.”

사실 갑신정변 내용을 읽다 보면, 조선의 왕이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리 보내지고 저리 쫓기는 모습이 실로 가관이다. 그렇게 하도록 옆에서 부추기던 젊은 개혁파들도 볼썽사납다. 박은식이 살아나서 <한국통사> 속편을 쓴다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친일 성향 정책들과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어떻게 기술했을까?

정치권에서 일제강점기를 둘러싼 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원래 역사 논쟁은 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혹은 강단과 재야에서나 벌어질 법한 것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교과서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정치권에서의 여야 공방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뉴라이트를 통해 무리수를 둔 현 정권 탓에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논쟁들이 부활해서 생명을 얻고 있다. 매일같이 주요 방송매체와 유튜브를 뒤덮는 정치권의 역사 공방을 보면서 일반 대중들도 이 문제에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홍범도 장군 동상을 치우지 않았다면 그가 누군지 관심이나 있었겠는가? 그동안 생계에 바쁜 일반 대중들에게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정통성, 건국절 등이 뭐 그리 큰 관심사였겠는가? 그런데 최근의 정치권 활약 덕분에 대중들도 이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잘되었다. 이 판에 감추어져 있던 우리의 과거를 드러내고 따져보고 판단하는 일을 모두 함께해보자. 누구 얘기가 맞는지. 그러면 그럴수록 무덤 속에 가둬두었던 목소리들이 부활할 것이고, 시민들은 책에서 나와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참에 역사 시험 문제가 하나 등장했다.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나라가 다 뺏겨서 일본으로 강제로 편입되었으니 당시 국적은 일본이었다”라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주류 학계에서는 이 주장을 명백한 오답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매력적 오답’이다. 역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종의 형식론적 사고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아마도 이 주장에 혹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 주장을 해석하는 역사 문해력이다.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막돼먹은 여러 주장들을 가감없이 털어놓고 논쟁해보는 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역사 공부이며 역사 문해력 향상의 지름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학교교육은 어떤 사건을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역사는 역사가들의 전유물이었고, 학교는 그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암기시키는 공간이었다. 역사교육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지식으로서 고정된 역사 연대기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추론하고 판단하며 필요한 증거를 찾는 사고 연습이지만, 그런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역사 공부는 학교 교과서에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서 우리 삶 곁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생동하는 자기조직적 생명체이며, 살아있는 역사는 살아 숨 쉬는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새 둥지를 튼다. 우둔한 권력자들은 과거를 직시하기는커녕 그 기억을 가공해서 국민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지만, 역사 문해력을 가진 국민은 그런 식으로 조종되지 않는다. 이제 역사 공부가 교실을 걸어나와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공부 중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교실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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