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딥페이크 희생양 된 ‘K팝’

기자 2024. 9. 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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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카테고리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웹사이트에도 있다. 자료 조사차 여자 연예인, 합성 등 특별할 것 없는 단어 몇개를 조합해 구글링을 하다 의도치 않게 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접속하여 K팝 카테고리에 들어가니 끝없이 많은 성착취물이 나왔다. 무료도 있고 유료도 있었다. 직접 생성할 수도 있었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찾은 합성 AI봇 텔레그램 방에도 들어가 봤다. 미성년자인 인기 여자 아이돌의 합성사진이 자동 메시지로 왔다. 돈만 내면 이런 걸 만들 수 있다고 영업하는 일종의 지라시였다. 대단한 기술이나 노력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너무나 쉽게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찾을 수 있었다.

실태를 파악한 후 ‘추적단불꽃’의 n번방 추적기인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입장료 70만원입니다. AV도 이것보다 비쌉니다. 연예인 및 온갖 일반 여자들의 믿지 못할 광경을 보는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을 만큼 싼 가격입니다.” 조주빈이 운영한 텔레그램 ‘박사방’의 유료 대화방 개설 공지문 내용이다. 2020년에 구속 기소된 조주빈은 징역 4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지만, 여자 연예인의 성착취물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싼 가격’에 디지털 성범죄의 미끼이자 먹이로 이용당하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이 주 피해자가 되는 범죄는 심각성이 후려쳐지는 혐오사회에서, 딥페이크 성착취 피해는 여자 연예인이라면 응당 감당해야 할 유명세로,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사적인 일로 여전히 축소되고 있다.

미국 보안서비스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제작물 현황’ 보고서에도 K팝 카테고리가 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전체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한 인물의 53%가 한국 국적으로 세계 1위이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개인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가수였다. “South Korean Singer(한국 가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환호를 받아온 그 이름이 충격적인 수치로 가득한 보고서에 가득 적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JYP를 시작으로 YG, 큐브, 하이브 등 주요 K팝 기획사가 강경 대응 입장을 발표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있었으면서, 인공지능(AI)이 만든 성착취물보다 AI 아이돌에 더 관심을 가져온 기획사들이 얼마나 실효적인 대응을 해 나갈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대한 업계 차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문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플랫폼을 움직일 힘과 자원을 가진 기획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여자 연예인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죄의식 없이 소비하는 판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고를 위해 딥페이크, n번방, 소라넷 등을 수시로 검색한 내 컴퓨터엔 지금 온갖 성착취물과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가 뜨고 있다. AI 기술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문이라고들 말하는데 딥페이크를 성착취물의 동의어로, 불법적이고 음란한 것으로 인식하는 국가에서 과연 어떤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남성에 대한 억압과 공격으로 호도하고 방치한 성차별 사회에서 만든 음악과 콘텐츠가 언제까지 세계의 각광을 받을 수 있을까. 최근 디지털 성범죄 소굴이었던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가 범죄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는 지체 없이 피해자를 구하고, 딥페이크 성착취의 문을 닫아야 할 때가 드디어 왔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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