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혜복 교사의 투쟁을 응원하는 이유
유년기와 청소년기 학교에서 마주한 만연한 성폭력은 내 몸을 부정하고 검열하고 규율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몸’을 당당할 수 없는 몸으로 느껴야 했고, 그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성별·키·체중·피부색·장애 등으로 ‘정상’에서 미끄러진 몸들은 쉽게 약점이 되었다. 교사들은 조롱한 가해 학생을 가볍게 혼내고 피해 학생에게 ‘가해 학생이 널 좋아해서 그런다’는 식으로 말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이는 노골적인 성폭력으로 변했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이 본 ‘야동(포르노)’을 교실에 모여서 보았고 영상에 나온 소리나 모습들을 모방하고 다녔다. 그들의 관점에서 ‘놀이’였다. 가슴이 큰 여학생들은 쉽게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 언어폭력은 신체적 폭력으로도 쉽게 이어졌다. 더 나아가 그들은 선생님들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고, ‘○○○ 선생님은 잠자리에서 별로일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도 교실에서 서슴없이 했다.
그런 행위가 문제가 된다는 눈치는 있었는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노골적 폭력은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존재했다. 조금 친밀해졌다 싶은 여학생의 어깨를 동의 없이 주무르거나, 머리를 만지는 남학생도 있었다. 한번은 남학생끼리 모여 여학생들의 가슴을 품평한 일이 발각됐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의 호통으로 끝났다. 성폭력 가해는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았다. 교실 안에서 벌어진 행동이었지만 교육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해 5월, A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났다. ‘가슴이 크다, 작다’는 식의 성희롱과 동의 없이 몸을 만지는 성추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지혜복 교사에게 알렸다. 지 교사는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고, 학생들의 제보가 사실임이 드러났다. 학교는 해결책이라며 남학생들에게 여학생들과 말을 섞지 말라고 했고, 사안을 진술한 피해 학생들의 명단이 노출됐다. 그 후 가해자들은 피해 학생들을 색출하고 반마다 무리 지어 다니며 책상을 발로 차거나 커터칼 소리를 내며 위협했다. 사이버불링도 이어졌다.
2차 피해가 심해지자 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센터에 제보했고 그해 12월 센터는 2차 피해를 사실로 볼 수밖에 없다며 6가지 권고를 했다. 가해자의 사과, 피해자회복프로그램과 성교육, 재발방지책 등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권고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해결하려고 했던 지 교사를 다른 학교로 보냈다. 당사자의 동의 없는 부당전보였다. 지 교사는 부당전보를 거부하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교육청은 부당전보를 해결하지 않고 무단결근이라며 지 교사를 징계하겠다고 징계위를 열었다. 그러나 지 교사는 A학교로 돌아가야 용기를 내 성폭력을 고발했던 학생들이 무기력과 패배감에 빠지지 않는다며 교육청 앞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A학교 사건을 접하자 내가 겪었던 초중고 시절의 현장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렇듯 ‘딥페이크’ 성범죄는 예상 가능한 학교 현실이다. 경찰청이 공개한 가해자 중 10대가 75%라고 한다. 10대는 이전 세대의 성차별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원래 그 나이대 남자애들은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놀랍도록 상황 판단을 잘한다. 본인들의 부모님 앞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교사 앞에서, 교장 선생님 앞에선 이런 문제적 행위를 쉽사리 하지 않는다. 가해는 특정 조건에서 이뤄진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다른 몸들과 만나는 장소다.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고, 내 몸이 소중한 만큼 다른 몸들도 소중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공교육이 가르쳐야 한다. 교육청은 반성과 올바른 성교육의 첫걸음으로 지혜복 교사의 부당전보 처분을 취소하고, A학교의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이주영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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