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충직한 로마인
140년 정도 방치된 무덤, 키케로가 찾아내고 돌봐
김진식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박사
로마인은 조상을 모시는 데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충직한 민족이었다. 로마를 대표하는 덕목을 하나만 뽑자면 ‘피에타스(pietas)’인데 이는 가족, 특히 조상에 대한 충직함이다. 로마의 건국 영웅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아를 떠나 이탈리아에 온 것은 조상의 신주를 모실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충직한 사람’이다. 로마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고대 비석은 대부분 망자를 기리는 것들이다. 로마인은 생전 본 적 없는 남의 무덤을 세워주고 돌보기까지 했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기원전 75년 속주 시칠리아를 다스리는 관리로 파견됐고, 그는 곧 시칠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 쉬라쿠사이를 방문했다. 키케로는 거기서 무덤을 찾았다. 무덤의 임자는 오늘날 뉴턴, 가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수학자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였는데 쉬라쿠사이가 낳은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이자 공학자, 과학자였다. 이때 무덤은 벌써 140년 가까이 방치된 상태였다. 쉬라쿠사이 사람들조차 위치를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키케로가 가진 단서는 비석에 원기둥과 원기둥에 내접한 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내접한 구와 원기둥의 부피가 2:3의 비율임을 증명한 수학적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었다. 키케로는 쉬라쿠사이 성문 근처에 덤불과 잡초가 사방을 덮은 곳을 뒤졌다. 사람들을 시켜 주변을 청소하고 덤불을 치우며 무덤으로 가는 길을 열었을 때 정면에 묘비가 보였다. 기껏해야 140년인데 반쯤 지워졌다고 하는 키케로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아무튼 비문은 반쯤 지워져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구와 원기둥은 또렷이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쉬라쿠사이를 방문한 로마인 키케로는 지중해 지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했던 그리스인의 무덤을, 한때 더없이 드높은 학문을 자랑하던 도시가 배출한 최고 학자의 비석을 찾아냈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금관이 순금인지 은이 섞였는지를 알아내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목욕탕 속에서 알아냈을 때 벌거벗은 채로 ‘헤우레카(heureca·eureka)’라는 말을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다’는 뜻이다. 그를 묘사한 18세기 판화는 배움과 깨달음의 기쁨에 들떠 창피한 것도 모르고 벌거벗은 몸으로 시가지를 뛰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원주율을 요즈음 수치에 아주 근사하게 계산해 냈으며, 태양과 달과 다섯 개 행성들의 운동을 조망할 수 있는 천구의를 발명하기도 했다. 키케로의 ‘국가론’ 제1권에 따르면 그가 발명한 천구의는 기존의 천구의와 달리 단 한 번의 회전으로 태양 등의 불균등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궤도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계 장치였다. 하늘에서 달이 태양을 가릴 때처럼 회전하는 청동 천구의에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 현상이 똑같이 재현됐다. 쉬라쿠사이를 함락시킨 정복자가 대단하고 찬란한 다른 전리품은 하나도 손대지 않고 오직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한 천구의만을 로마로 가져갔을 만큼 경이로운 발명품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도시 함락 직후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를 데려오라는 로마 장군의 명령을 받고 그를 찾아갔다고 한다. 도시가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던 날에도 수학자는 흙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그가 좋아하는 기하학의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를 데려가려는 병사에게 자신을 방해하지 말고 그냥 좀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소리 질렀고 이에 격분한 로마 병사는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내 원을 건들지 마라’. 자긍심의 발로였을 이 한마디 외침은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전쟁에 패하여 조국은 패망하고 있는데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한가롭게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노인의 모습은 무지한 로마 병사에게 한심해 보였을지 모른다.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이는 낙서 같은 것에 열중하며 이제 도시의 통치자가 된 로마의 권위와 명령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노인의 태도가 승리로 우쭐한 로마 병사에게 괘씸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힘 있는 자는 무력한 자에게 늘 가혹한 법이기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불귀의 객이 되던 날 쉬라쿠사이를 정복한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는 노학자를 위해 무덤을 만들고 구와 원기둥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위로할 뿐 누구를 원망하겠냐마는, 다만 허망하게 떠난 학자의 업적을 기려 묘비를 세워준 갸륵한 마음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또 먼 훗날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로마의 고위 관리가 학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고향 사람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버려진 무덤을 찾아내고 돌본 정성은 우리를 감복시킨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서글퍼하고 떠난 이의 업적을 기억할 줄 아는 충직함이 있었기에 로마는 지중해를 지배하는 위대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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