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균형발전연구센터장·특임교수 2024. 9. 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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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균형발전연구센터장·특임교수

유럽의 도시를 떠올리면 그 첫 번째가 거리마다 멋진 건축물과 문화예술이 넘쳐나는 파리일 것이다. 지금의 세계도시 파리는 19세기 후반기를 통치하던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파리 대개조계획’에 의한 합작품이다. 당시로서는 불도저식 도시계획, 토지의 수용과 매각에 의한 지가 상승 등의 부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상하수도망을 건설하고 박물관과 시립병원 등 공공시설을 확충했다. 핵심은 파리개선문을 에워싼 12개축의 쭉뻗은 광로와 넓은 보도를 건설하고 많은 가로수와 공원의 녹지체계를 조성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관리되고 있는 건축물 파사드와 가로시설물, 쭉 뻗은 도로가 만들어내는 도시 경관은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뉴욕의 대표 명소인 센트럴파크와 하이라인은 어떠한가. 센트럴파크는 무허가 채석장과 가축농장, 저소득층 판자촌이 널려 있던 뉴욕시 소유의 습지였다.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브라이언트가 이곳에 공원을 건설하자는 캠페인을 뉴욕포스트지에 기고한 것을 계기로 1856년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와 건축가 캘버트 복스가 공원 조성을 시작했다. 1876년 완공 후 뉴욕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당시 도시화로 엄청나게 늘고 있던 뉴욕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주택개발사업 대신 맨해튼 한복판에 103만 평이나 되는 부지를 공원으로만 조성하는 결정에는 적잖은 반발이 있었다. 여기에 옴스테드는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반박했는데 그의 예언대로 뉴욕의 안식처이자 문화공간으로 가치는 엄청나다. 뿐만 아니라 센트럴파크는 민관 거버넌스인 ‘센트럴파크 컨저번시’에 의해 관리·운영되며 뉴욕시 지원은 전체 예산의 20% 수준에 그칠 만큼 자립도가 높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뉴욕의 하이라인은 주변의 공장과 창고에 물류를 이동하기 위해 조성된 고가철도가 20여 년간 방치된 채 폐기될 위기에서 여행작가인 조슈아 데이베디와 로버트 해몬드라는 두 청년이 철거 대신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2000년 초, ‘프렌즈 오브 하이라인’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하이라인의 보전과 재개발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이를 뉴욕시에서 수용하면서 부산시민공원을 설계했던 제임스코너에 의해 하이라인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하이라인 공원은 폐허에 새로운 도시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침체된 주변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도심 속에서 자연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항구도시인 함부르크 하펜시티는 항만재개발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마스터플랜에만 10년 넘게 소요되었고 개발사업에 치중한 다른 도시를 반면교사 삼아 역사와 문화적 요소를 지역발전전략으로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개관한 엘베 필하모니홀이다. 2001년 삼각박스형의 낡은 벽돌창고를 철거해서 콘서트홀을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독일 건축가 베르너 칼모르겐의 1963년 작품인 것이 밝혀져 건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오랜 공론화 끝에 기존건물 위에 증축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결국 초기예산의 4배 가까운 약 1조 원을 넘기면서 위기도 있었지만 시민의 문화적 자부심과 언론이 함께 필요성을 동의하면서 지금은 하펜시티 최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파리 뉴욕 하펜시티 외에도 건축물, 공원녹지, 혹은 교량이나 오래된 나무 한그루 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찾아오며 즐기는 공간과 시설은 저마다의 조성 과정의 스토리가 있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한 키맨이 있다.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공간과 시설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며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 도시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의 삶이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기대 입구의 아파트 건설 논란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 도시의 각종 개발사업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불거졌던 많은 논란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스토리텔링을 해왔으며 어떤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줄 것인가. 다양한 논의를 수렴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제 역할을 다해줄 키맨과 리더가 있는가. 함께 숙고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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