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세계의 시간, 앞으로 5년 [세상읽기]

한겨레 2024. 9. 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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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향후 5년은 이후 50년 동안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놔둘 것인지를 가를 것이다.”

이 말은, 지난 7월18일 재선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5년의 새 임기 비전을 밝힌 ‘유럽의 선택’에 나온 말이다. 새 임기를 시작하는 공직자들이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말하는 건 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2024년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사는 내게 그의 이 말은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한다. 향후 5년 동안 유럽연합이, 세계가 만들어갈 시간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시간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유럽의 선택’에서 그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유럽의 지속가능한 번영과 경쟁력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다. 청정산업협약(Clean Industry Deal)을 구축해 탈탄소화를 추진하고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한다. 당장 유럽 정부들과 공공기관 사업에서 기후친화적 철강을 사용해 공공영역이 선도하는 대규모 그린 철강 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역을 시멘트, 알루미늄 등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35% 정도가 공공부문이 집행하는 건설 분야에 사용된다. 따라서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세계 철강 수출 4위 국가다.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내 사용하는 철강의 절반 정도를 유럽연합 외부에서 수입하고 있고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주 수출국도 유럽연합이다.

이미 고지되어 있던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는 2026년 1월부터 적용되며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제품부터 시작해 확대된다. 우리나라 수출에 탄소 장벽이 세워지는 건 비단 유럽만이 아니다. 당장 미국 의회는 올해 안에 ‘청정경쟁법’(CCA)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찬성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2025년부터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 등 12개 품목의 수입품이 미국 국내 제품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할 때 배출량 기준 부담금이 부과된다.

지난달 29일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는 제1차 탄소중립정책협의회에서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포스코홀딩스 전무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와 미국의 청정경쟁법 등에 대응하려면 연간 370만톤의 그린수소와 4.5기가와트의 무탄소 전원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차질 없는 공급을 요구했다. 기후친화적 철강은 철강 생산 단계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을 사용해 생산되는 제품을 말한다. 그러니 재생에너지 전력이 당장 대규모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총 전력량 가운데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9% 정도다. 전세계 기준으로나 유럽연합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이미 30%를 넘어섰다. 유럽연합 전체적으로 태양광발전만 2023년보다 2024년 20%가량이 늘어났고 풍력발전도 9.5%가 늘었다.(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 ‘유럽연합 전력보고서’) 세계 각국이 에너지 전환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 5월 정부가 공개한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우리나라는 2038년이 되어야 2024년 현재 세계 평균과 비슷한 재생에너지 비중 32.9%에 도달한다고 한다.(정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이미 세계 평균과 15년의 격차가 나 있는데, 정부는 향후 15년 동안에도 굼벵이 걸음으로 가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큰일이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보여온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인식이나 대처를 보건대 이 정부에서 뚜렷한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정부가 대책을 수립하도록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및 정부 탄소중립계획에 대한 헌법소원 선고에서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고 2026년 2월28일까지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2030년까지밖에 없는 탄소중립계획을 2050년까지 확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어차피 법을 바꾸어야 하니 2025년 1년 동안 정부의 에너지 전환 계획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정부에 기대할 바가 없으니 국회와 전문가, 시민들이 대책을 논의할 기구부터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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