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소설가에게 배우는 예술…노년 정서가 윤택해졌다
- 부산문화재단 예술치유활동 중
- 범일동서 열린 ‘음악으로 꽃피움’
- 유학파 테너가 가르치는 트로트
- 노년 대상 ‘황금빛 예술학교’
- 인문학 콘텐츠로 풍성한 강의
- 부산소설가협회는 창비 부산서
- 50대 이상 대상 글 강좌 열어
이번 회차 취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놀라움의 연속! 이번 회 주제는 일상 속 문화예술교육의 힘을 현장에서 확인해보는 쪽으로 원래 방향을 잡았다. 현장을 여러 곳 취재하면서 ‘나이 듦과 예술, 나이 듦의 예술’로 확신을 갖고 선회했다. 그만큼 느낌은 선명했고, 생각해 볼 거리는 많았다. 무엇보다 현장이 활발했고 흐름이 손에 잡혔다.
요약하자면 ▷지역사회에 장년(長年·50~64세) 노년(老年·65세 이상)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예술·문화 ‘자원’이 예상보다 다채로웠고, 진화하는 중이었다 ▷예술·문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장년·노년 시민이 높은 효능감을 느낀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여기 참여하는 예술가 또한 단순히 봉사활동을 넘어 자기 예술에 도움이 되는 영감과 확장을 경험한다 ▷앞으로 공공 문화·예술 정책은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이 듦’이란 단지 늙음 또는 늙어 감을 뜻하지 않고, 장년과 노년을 일컫는다. 장년은 삶의 전환이 또 한 번 크게 일어나는 시기이며, 갈수록 길어지는 노년은 사회 차원의 돌봄과 지원을 많이 필요로 한다. 예술이 할 일은 점점 많아진다.
▮유학파 성악가와 할머니들
노래하기 전 준비운동 격인 몸 풀기와 목 풀기는 제법 오래, 즐겁게 진행됐다. 가곡 ‘봄이 오면’으로 시작한 노래 부르기는 고운 가요 ‘만남’을 거쳐 신나는 트로트 ‘십오야’로 이어졌다. 수강생 15명에게 플라스틱 컵을 두 개씩 나눠주자 모두 ‘십오야’ 장단을 능숙하게 두들겼다. 지난 13일 부산 동구 범일5동 마을건강센터에서 펼쳐진 ‘2024 예술로 풀어가는 마음치유사업-일상을 담다’(6~11월)의 하나인 ‘음악으로 꽃피움’ 3회차 수업 현장이었다.
이 강좌는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4 커뮤니티 예술치유활동’의 일부로, 부산표현예술치료연구소와 동구보건소가 주관한다. 범일5동 마을건강센터는 매축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오래된 주거지대 한복판에 있다. 수강생은 60대 이상 15명이고 모두 여성이다. 친근하게 “할맨교!” 하고 불쑥 인사하고 싶어지는, 동네 할머니들이다. 주 강사는 서치환 테너다. 그는 이탈리아에 유학을 다녀와 활발히 활동하는 부산의 성악가이다. 보조 강사는 무용을 바탕으로 하며 현재 부산대 대학원 통합예술치료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신수빈 씨다.
이탈리아 유학파 강사가 발성법을 가르치며 ‘십오야’까지 함께 부르고 무용가가 율동과 춤을 같이 하는 ‘엄청난’ 강연이 동네 마을건강센터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인상 깊었다. 이 자리에서 ‘일상을 담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부산표현예술치료연구소 하정화 씨(부산대 통합예술치료학과 박사과정)를 만났다. 전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김정향 부산대 통합예술치료학과 대학원 겸임교수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부산표현예술치료연구소가 부산문화재단의 위탁을 받아 부산 전역 17곳에서 동네 마을건강센터와 협업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강서구 가락동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술 이야기’, 서구 남부민1동에서는 무용을 활용한 ‘춤추는 나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3, 4개월에 걸쳐 11~13강 정도로 구성했다. 수강생은 모두 고령의 주민이다. 예술강사로는 박사·석사 과정 이상의 전문가 32명이 활동하는데, 부산대 통합예술치료학과 대학원과 부산표현예술치료연구소가 이를 든든히 뒷받침한다.
무용을 전공하고 통합예술치료 전문가가 된 김정향 하정화 씨는 “고령에 따른 여러 어려움을 겪는 주민에게 예술치유는 큰 도움을 주기에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수요측면과 2020년 생긴 통합예술치료학과 대학원의 전문성 등을 고려하면 이런 접근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이태석신부기념관에 모여
부산문화재단이 펼치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가운데 ‘황금빛 예술학교’라는 범주가 있다. 재단 김예인 문화교육팀장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황금빛 예술학교는 연세가 많은 분들이 주요 대상이다. 올해는 14개 단체가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꽃띠들의 예술 탐심(프로그램명)-60대 이상(대상)-문화예술교육컨텐츠협회(주관 단체)-채승희(대표) ▷2024 내 인생을 함께 보다, 사진으로 쓰는 글-50대 이상-부산소설가협회-정영선 ▷신 노년 나빌레라-70대 이상-댄스위더스-김민경 등이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서구 남부민동 이태석신부기념관으로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문화예술교육컨텐츠협회가 ‘꽃띠들의 예술 탐심’ 프로그램을 20회차 일정으로 펼치고 있다. 수강생들 곁에 앉아 채승희 대표의 강연을 들어보았다. 송도윗길·송도아랫길·천마산에 걸친 남부민동은 ‘산복도로 달동네’ ‘6·25때 피란민이 몰려들어 형성한 마을’로 표현되는 오래되고, 넉넉하지 않은 마을이다. 그런데 60대 이상 수강생이 모인 ‘꽃띠들의 예술 탐심’은 창의적이고 인문의 깊이·향기가 있었다.
채승희 대표는 캐나다에서 널리 사랑받는 할머니 화가 모드 루이스와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내 사랑’(감독 에이슬링 월쉬) 이야기부터 지난 회에 방문해 창작 수업을 했던 인근 ‘알로이시오 기지 1968’ 영상 등을 활용하고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이야기도 섞어가며 강좌를 풍성하게 가꿨다. 뭔가 만들고 창작하는 행위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긍정하고 충만감을 느끼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태석신부기념관 이사·서양화가·문화예술교육사이며 약 40년 강단에서 가르친 이력이 있다는 채 대표는 “이태석신부기념관 그리고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신부님 등과 함께 몇 년 전부터 뜨개질 등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을 남부민동에서 해왔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은 도움이 된다. 우리 수강생들이 최근 마을 영화 만들기 사업에도 선정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커뮤니티비프에서 상영된다. 주민이 성장하고 활동을 확장해 가는 모습에서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소설가의 글쓰기 열강 현장
가난한 마을에 자리한 이태석신부기념관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은 채 발길을 부산역 바로 앞 창비 부산으로 돌렸다. 여기서는 부산소설가협회가 50대 이상 시민과 함께 여는 ‘내 인생을 함께 보다-사진으로 쓰는 글’ 강좌가 열린다. 부산소설가협회는 부산 금정구 서동예술창작공간에서도 별도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각각 15회차 일정이다. 그 열정이 좋아 보였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컴퓨터를 붙들고 창작의 고뇌에만 시달릴 것도 같은 소설가들이 세상으로 나와 시민을 만나 글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다니!
고풍스런 창비 부산에 들어서니 기획을 맡은 정미형 작가가 반겨주었고 최시은 작가는 열강하고 있었다. “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좀 더 풍요롭게 가꾸자”고 강조한 열강이 끝난 뒤 수강생 전민서(73) 씨는 “친구 소개로 다니게 됐다. 부동산 강의도 듣고 갈맷길도 걷다가 글쓰기 강좌를 들으니, 새로운 꿈이 생겨버렸다. 기쁘고 설렌다”고 말했다. 수강생 조재범(56) 씨는 “글을 써서 공개하는 게 처음에는 어려웠다. 지금은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공감력도 커졌다”고 한결 좋아진 생활을 이야기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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