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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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幽體離脫)은 영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분리된 듯한 상태를 말한다.
유체이탈은 중국에서는 영혼출규(靈魂出竅, 영혼이 구멍으로 나감), 일본에서는 체외이탈(体外離脱, 몸 밖으로 벗어남)이라고 한다.
일상어법에서 유체이탈에 신비스러운 의미는 별로 없다.
2011년에야 유체이탈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용법, 즉 정치인이 '자신이 당사자임을 망각하고 남이 얘기하듯 한다'는 의미로 신문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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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유체이탈(幽體離脫)은 영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분리된 듯한 상태를 말한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이를 경험한 사람은 10%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도 꽤 있다. 일시적인 뇌손상을 원인으로 보기도 하고, 죽음의 공포를 회피하기 위한 환상으로 보기도 한다. 유체이탈은 고사성어가 아니다. 신종 한국어로, 옛날 신문을 검색하면 1970년대 중반 ‘초능력 개발’을 선전하는 오컬트 업체 광고에 처음 등장한다. 기사에 등장한 건 1990년대 중반부터. 유체이탈은 중국에서는 영혼출규(靈魂出竅, 영혼이 구멍으로 나감), 일본에서는 체외이탈(体外離脱, 몸 밖으로 벗어남)이라고 한다. 일본어는 ‘무엇이’ 빠져나갔는지 특정하지 않으려 하는 반면, 유령의 ‘유’자를 넣고 시작하는 한국어는 가장 오컬트적인 느낌을 준다.
일상어법에서 유체이탈에 신비스러운 의미는 별로 없다. 장시간 회의실에 붙들려 있는 회사원이나, 떠들썩한 모임에 참석한 내향적인 사람의 멍한 상태를 표현할 때도 쓴다. 말 자체가 대중화된 시점은 2007년 같다. 왠지 그때부터 출현 빈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2010년의 어떤 경제 기사는 각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유체이탈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지금으로서는 좀 상상하기 어려운 용법을 보여준다. 2011년에야 유체이탈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용법, 즉 정치인이 ‘자신이 당사자임을 망각하고 남이 얘기하듯 한다’는 의미로 신문에 나타난다. 그 후 이 말은 드디어 임자를 만난 듯 당파를 초월한 필수적인 정치 용어가 됐다.
우리는 유체이탈을 약한 수준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적반하장은 도둑, 즉 잘못한 쪽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이다. 한편 유체이탈은 잘못한 쪽이 매를 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선량한 제3자인 체한다는 의미랄까. 둘을 비교하면 정치에 더 적합한 것은 유체이탈 쪽임을 알 수 있다. 정치의 언어는 생각보다 대결적이지 않아서, 우리가 ‘한방 먹였다’고 생각하는 말도 뜯어보면 본질은 동문서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질문을 곧이곧대로 받아치는 건 초보나 하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동문서답이 정치인의 기본기라면 적반하장은 위험부담이 큰 변칙 기술이다. 빠져나가야 할 그 주제로 나서서 들어가는 격이기 때문이다. 남의 일인 척하는 유체이탈이 파괴력은 덜할지 모르나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다.
유체이탈 화법은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예컨대 트럼프는 자신을 ‘워싱턴 기득권 엘리트’와 홀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주장은 그의 엄청난 재산과 인맥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자신이 20년 가까이 철권통치 중인 나라가 돌연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유체이탈 화법의 본질은 무책임이다. 때문에 책임성의 회복이 궁극적인 해결처럼 여겨진다. “내가 책임지겠다.” 이 말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내가 책임진다고 할 때, 과연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책임인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고, 또 책임지는 날이 언제인지도 확정되어야 맞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튼 언젠가는 책임지겠다는 말이 될 뿐이다. 그 숨은 뜻이 “당장은 책임 못 진다”는 거라면 또 하나의 유체이탈 화법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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