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AI 교과서` 서두르는 게 답인가

팽동현 2024. 9. 25. 18: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팽동현 ICT과학부 기자

최근 여러 현직 교사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소프트웨어(SW) 산업현장에서 뛰는 기자인 만큼 그런 자리마다 AI디지털교과서에 대해 묻곤 했다.

AI디지털교과서는 AI를 포함한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다양한 학습자료와 학습지원 기능 등을 탑재한 교과서로, 기존 서책형 교과서와 함께 쓰이게 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6월 'AI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2028년 전면 시행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학생 개개인 대상 눈높이 학습에 초점을 맞춰 '500만 학생을 위한 500만개의 교과서'를 표어로 삼았다.

AI디지털교과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학생의 학습현황을 파악해 맞춤형 과제를 부여하거나 다양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AI보조교사는 방과 후에도 어디서나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진로 탐색·설계에도 보다 개인화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일선 교사들도 이런 장점과 도입 취지에 동의하며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고 대부분 공감을 표했다.

문제는 그 '언제'다. 교사들은 하나같이 "막막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당장 내년부터 써야 하는데 실물을 접했다는 이를 최근까지도 만나지 못했다. 이제야 시제품이 공개된 수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내년에 초등 3·4학년, 중등 1학년, 고등 1학년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국어(특수교육) 등 과목에 우선 도입이 예정된 상황이다.

우선, 교육현장과의 소통 부족이 지적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소수의 교사들은 개발·검증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 같진 않고, 현장에 전달되는 것도 거의 없어 불안한 마음만 커진다"고 말했다. 또 한 중학교 교사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오프라인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늘었다. 현장에 여러 이슈와 과제가 산적했는데, 그 모든 것을 제치고 할 일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AI를 포함한 교육 방향 전반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생 쯤 되면 AI 도구 자체는 적잖은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다루는 실정"이라면서도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 문화 등 영향으로 문해력이 낮아져 맥락을 짚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리터러시나 컴퓨팅 사고력 등이 뒷받침돼야 AI도 잘 쓸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다만 AI디지털교과서 시제품에 대해선 긍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AI디지털교과서 작업에 참여한 한 교육자는 "느린 학습자나 청각 장애인 등을 위한 배려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급하게 진행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날림으로 만들고 있진 않다"고 조심스럽게 옹호했다. 보수적인 교육 분야에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일정 이상 품질을 갖추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이를 검증·개선할 시간과, 활용할 교사들에 주어진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다. 지난 4월 교육부는 올해 교사 15만명 대상으로 연수를 하겠다고 했지만,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수를 완료한 교사는 5만명에 불과하고 이 또한 시제품으로 실시한 것이다. 실제 쓰일 교과서는 개발·검정 일정이 지연돼 겨울방학 직전인 오는 11월말에야 공개될 예정이다. 교육현장에서 별 문제 없을지, 기대한 효과를 거둘지 검증할 수 있는 기간이 내년 3월 개학 전까지 3개월에 불과하다.

물론 AI디지털교과서가 성공한다면 미래교육의 새 장을 열고 IT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서비스 품질과 현장의 준비가 갖춰졌을 때 얘기다. 실물도 없이 세계무대에 가서 세계 최초의 도전이라 내세우기보다는, 신중한 검토와 철저한 준비를 거쳐 세계 최고 수준의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선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높으신 분들의 실적을 위해 세계 최초에 목매었던 5G, 개발 시간·예산이 부족했던 여러 행정망 시스템 등이 이후 어떤 결과를 낳았나.

교육은 백년대계라 한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학생들이 짊어질 무게는 갈수록 무거워질 것이다. 짐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힘이라도 제대로 길러줘야 한다. '애자일'로 포장하기엔 학생들의 1년은 돌이킬 수 없다. AI 3대 강국(G3)을 노린다면 미래 역시 그에 걸맞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또 교사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AI디지털교과서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듣고 싶다. dhp@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