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고물가 시대 저문다” 발언한 날, 배춧값은 1만원 훌쩍 넘었다

공성윤 기자 2024. 9. 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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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염으로 인한 작황 부진 탓에 1만원 밑으로 안 떨어지는 가락시장 배추 도매가
일부 소매상은 포기당 1만7000원에 팔기도…“중국산 수입해도 대형 도매업자만 이득 봐”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수년째 이어오던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저물어 가는 조짐이 보이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최근 '빅컷(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것을 두고서다. 곧이어 윤 대통령은 "우리 수출이 전년 대비 9.9% 증가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고 있다"며 국내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매번 생중계로 공개하는 모두발언은 국정 지표를 가늠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물가 저문다"…근거는 美 금리 인하와 우리 수출 증가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공개된 이날, 배추 소매가가 일부 판매점에서 2만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제적 요인보다는 여름 내내 폭염으로 인한 수급 부진 등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 그럼에도 체감 물가와 배춧값의 연관성이 큰 데다 가을 김장철을 앞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발언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5일 현재 배추 가격은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1만원 안팎의 소매가를 형성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날 서울 송파구 슈퍼마켓과 가락시장을 돌며 배추 가격을 둘러봤다. 송파구의 한 농협 하나로마트에는 배추 한 포기의 원래 가격이 1만900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다만 할인율 20%인 농림축산식품부 할인쿠폰(농할쿠폰)이 적용돼 소매가는 8720원이었다.

농할쿠폰을 통한 할인 행사에는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가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참한 건 아니다. GS마트(GS더프레시)에서는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기존 시세에 가까운 9990원이었다.

25일 서울 송파구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판매중인 배추 ⓒ 시사저널 공성윤

밥상물가 좌우하는 배추는 9월부터 1만원대 '金배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대형마트·전통시장 등에서 판매되는 배추 한 포기의 소매가는 9383원을 기록했다. 올해 최고가를 찍었던 전날(9474원)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작년 9월15~25일 기준 평균 소매가(6193원)와 비교하면 51.5% 비싸다.

그래도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은 별도 물류센터를 두고 산지 직송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농산물을 비교적 싸게 판매할 수 있다. 농할쿠폰도 한 몫 했다. 반면 서울 동남권 최대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는 이달 초부터 배추 한 포기당 1만원이 웃도는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가락시장 입구 근처에서 농산물을 파는 소매상 A씨에게 배추 가격을 물었다. A씨는 "배추 수급이 안 좋아서 오늘은 안 갖다놨다"며 "배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구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시장 안쪽의 소매상 B씨는 "배추를 한 포기씩 팔지는 않고 한 망(10kg·3포기)에 4만3000원에 판다"고 했다. 한 포기에 1만4000원 꼴이다. B씨는 "이것도 안 팔릴까봐 도매가보다 싸게 내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매상 C씨는 배추를 한 포기씩 팔았다. 그런데 가격은 1만7000원으로 더 비쌌다.

25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전경 ⓒ 시사저널 공성윤

가락시장 상인들 "배추 수급 나빠 안 갖다놨다" "한통에 1만7000원"

농산물유통정보에 의하면 가락시장의 배추 한 망(특등급) 도매가격은 24일 3만8845원을 기록했다. 지난 21일에는 올 들어 최고가인 6만4195원을 찍었다. 한 포기당 2만원이 넘는 꼴이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만2000원' 가격표가 찍힌 배추가 하나로마트에 진열된 사진이 돌아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8월 생산자물가지수를 봐도 배추를 중심으로 오른 원재료값 때문에 농산물 물가지수가 전달보다 7.0% 높게 형성됐다.

이처럼 가격 폭등으로 '금(金)배추'란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 속에 "고물가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도 현재 상황의 경제적 미흡함을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24일 모두발언에서 "누적된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라며 "경기 회복의 온기가 구석구석까지 닿아서 국민들께서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2일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나로마트 배추 가격. 한 포기에 2만2000원 가격표가 붙어있다. ⓒ 온라인 커뮤니티

中 배추 수입 결정했지만 대형 도매업자 위주로 우선 공급돼

이에 따라 정부는 배춧값을 잡기 위해 27일부터 중국산 배추 16톤을 수입하기로 했다. 중국산 배추 수입은 역대 5번째다. 다만 개인 소비자나 소매상, 영세 요식업자 등이 즉각 변화를 느끼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입 물량이 우선 외식 업체와 식자재 업체, 김치 제조공장 등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풀리기 때문이다. 가락시장 소매상 B씨는 "중국산 농산물 수입은 대형 도매업자들에게나 반가운 얘기지 우리같은 영세 소매업자들은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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