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칼럼] 코끼리 옮기기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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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8일 런던·버밍엄 등 영국 6개 도시에서 '전 국민 연금의 날' 행사가 열렸다.
1000여 명의 시민들은 고령화 추세와 연금재정 현황, 사적 저축 실태, 노년 빈곤 전망 등에 관해 명확하고 쉽게 가공된 정보를 제공받았다.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는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연금개혁은 국가재정과 국민의 노후, 노동 관행을 아우르는 복잡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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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실체 제대로 알아야
고통분담 필요한 연금개혁
정보 가감없이 공개하면
국민이 올바른 판단 내릴 것
2006년 3월 18일 런던·버밍엄 등 영국 6개 도시에서 '전 국민 연금의 날' 행사가 열렸다. 1000여 명의 시민들은 고령화 추세와 연금재정 현황, 사적 저축 실태, 노년 빈곤 전망 등에 관해 명확하고 쉽게 가공된 정보를 제공받았다. 객관적 사실을 상세하게 접한 국민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알게 됐다. 그 결과 사용자단체와 노조·야당과의 합의가 이뤄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합의는 정권이 바뀐 후에도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영국의 연금개혁 과정을 분석한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에 따르면 영국 연금위원회는 합의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상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사실을 통해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한 비용과 책임을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의 전제 조건이 '상태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금개혁 논의는 갈 길이 멀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숫자가 많은 데다 정부 개혁안의 파급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개혁안의 핵심 쟁점인 자동안정장치를 예로 들어 보자. 올해 100만원을 받는 연금 소득자는 내년에는 물가 상승분만큼 늘어난 연금을 받는 것이 현재 방식이다. 올해 물가가 3.6% 상승했다면 내년에는 103만6000원의 연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연금 가입자 수와 기대여명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조정되는 자동안정장치가 도입되면, 물가 상승률에서 가입자 수와 기대여명 증감분을 뺀 만큼이 연금 상승률이 된다. 지난 3년간 평균 가입자 수가 0.3% 감소하고, 기대여명이 0.3% 늘었다면, 연금 인상률은 3.6%가 아니라 3%가 된다는 의미다. 국민은 연금 수급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자동안정장치=자동삭감장치'라는 프레임까지 씌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동안정장치는 당장 도입되는 것이 아니고, 전년보다 최소 0.31%는 늘어난다"는 원론적인 해명 이외에는 적극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자동안정장치의 도입 목적은 재정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것이며, 실질적인 수급액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부터 정부는 인정해야 한다. 수급액이 얼마나 줄어들게 될지, 추가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일 수 있는 순기능도 널리 알려야 한다.
'세대 간 갈라치기'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는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50대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 인상하는 방식이다.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를 낸 기간이 긴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소득이 낮은 50대나, 세대 구분의 경계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줄 보완책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정부 대응은 미온적이다.
연금개혁은 국가재정과 국민의 노후, 노동 관행을 아우르는 복잡한 문제다. 이해관계자가 많고 다양해 총파업이나 정권퇴진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코끼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공개하고,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해야 한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선택하는 세대 간·진영 간 갈라치기로는 코끼리를 옮길 지혜를 모을 수 없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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