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경연에 계급·무협 만화 한 스푼, 간이 딱 맞네···‘흑백 요리사’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지난 18일 선보인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고전적인 요리 서바이벌에 ‘계급 갈등’을 한 스푼 끼얹고 무협 만화의 재미를 한 꼬집 집어넣자 감칠맛 넘치는 콘텐츠가 탄생했다.
반응은 뜨겁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공개 당일부터 지난 22일까지 38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고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온·오프라인에선 출연자들이 운영하는 식당 목록이 퍼졌고, 네이버 지도는 셰프들의 식당 100여 곳을 애플리케이션에 발 빠르게 업데이트했다. 시청자들은 왜, 가을맞이 나들이 대신 TV와 모니터 앞으로 모였을까.
<흑백요리사>는 대한민국 최고 스타 셰프 ‘백수저’ 20인과 재야의 고수‘흑수저’ 셰프 80인이 벌이는 요리 대결이다. 최현석, 오세득, 에드워드 리 등 유명 셰프와 별명으로만 불리는 무명의 요리사들이 계급과 자존심을 걸고 경쟁을 펼친다.
‘흑과 백’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계급 구도를 깔아두고 출발한 시리즈는 언뜻 언더독의 반란과 그들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동력 삼는 듯 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커리어에 흠집이 날 위험을 감수하고 흑수저의 도전을 받아들인 백수저 셰프들은 우아하게 자신의 명성을 증명해나간다. 요리를 대하는 진중한 태도는 그들이 왜 최고로 인정받는지 납득시킨다. 흑수저 셰프 역시 명장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도전에 임한다. 세계관 일인자와 은둔 고수의 진검 승부는 무협 만화에서 느낄 법한 긴장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실제 각종 식재료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지지고 볶고 튀켜 아름다운 한 접시를 만들어내는 셰프들의 움직임은 무협 고수의 액션과 다름없다. <흑백 요리사>를 보고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피지컬: 100>를 떠올리는 시청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배달 노동자 출신 중식 셰프인 ‘철가방 요리사’와 중식대가 여경래가 펼친 일대일 대결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소꼬리 요리 승부에서 승리한 철가방 요리사가 상대를 향해 냅다 큰절을 올리고, 따뜻하게 그를 안아주는 대가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시리즈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또 다른 매력은 개성 넘치는 출연자들이다. 해외 유명 요리 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요리사도 멋지지만, 요리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매력의 흑수저 요리사들은 이야기를 예측불가능하게 만든다. 비빔밥에 대한 사랑으로 이름까지 ‘비빔’으로 개명한 ‘비빔 대왕’은 오랜 시간 연마한 비장의 비빔밥을, 요리 만화책으로 중식을 독학한 ‘만찢남’은 만화 속 동파육 선보인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카메라가 ‘우리 곁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요리사’들을 비출 때다. 아이들의 점심을 책임지는 학교 급식 노동자 ‘급식 대가’, 기막힌 손맛의 요리주점 사장님 ‘이모카세’(이모와 오마카세를 합친 말)는 닭볶음탕 같은 소박한 음식으로 심사위원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는다. 재야의 고수들이 수십 년 갈고닦은 솜씨를 인정받는 순간 시청자 역시 뭉클한 감정을 느낀다.
요리 서바이벌인 만큼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요리의 세계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평소 보기 힘든 파인 다이닝이나 어디서부터 볼 법한 맛깔스런 반찬들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요리가 매회 선을 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다운 대규모 세트 등도 눈을 즐겁게 한다. 80인의 흑수저 셰프가 경쟁한 1라운드는 이들이 한날한시에 요리할 수 있도록 지어진 1000평 규모의 주방에서 이뤄졌다. 3라운드 단체 미션에서는 100인의 평가단이 나란히 앉아 각 팀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장관도 연출됐다. 전체 시리즈 촬영에 동원된 조리도구는 프라이팬과 냄비, 접시 등을 더해 천 개가 넘는다. 제작진은 촬영마다 300대 넘는 카메라를 동원해 각 요리사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심사위원 백종원, 안성재가 빚어내는 재미도 상당하다. ‘요식업 제왕’ 백종원과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 셰프 안성재는 각각 대중적 입맛과 고급 요리를 대표하는 전문가다. 이들은 비슷한 듯 다른 기준과 취향, 미각을 가지고 자신 앞에 놓인 요리를 성심껏 평가한다. 특히 흑·백수저 셰프가 일대일로 대결한 2라운드의 ‘안대 심사’는 큰 화제가 됐다. 눈으로 가리고 오직 맛으로 평가하는 이 단계에서 두 사람은 때때로 불꽃 튀는 토론을 벌인다. 이 과정에선 각자가 가진 풍부한 지식은 물론 요리인으로서 철학과 신념마저 드러난다.
<흑백요리사>는 총 12부작이다. 지난 24일까지 7개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내달 1일 8~10회, 8일 11~12회가 베일을 벗는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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