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흠 "난 장거리 선수···30년 노하우 살려 액티브 공모펀드 전도사 될것"[CEO&STORY]

이정훈 기자 2024. 9. 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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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준흠 신영자산운용 사장
장기투자처럼 한번 하면 몰입하는 성격
신입서 사장까지···34년 '신영맨' 외길
자산운용사 단기 수익률만 좇아선 안돼
돈 안전하게 굴리면 고객신뢰 따라올것
ETF 장점 크지만 편의성은 양날의 검
복리의 마법 없어지는 '毒'이 될 수도
엄준흠 신영자산운용 사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서울경제]

“우리 같은 장거리 주자 선수들에게는 단거리 경쟁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달 13일 서울 여의도 신영자산운용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엄준흠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투자 철학부터 강조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의도에서 꿋꿋이 자신만의 철학을 지켜온 결과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엄 사장은 “요즘 같은 ‘미스터 마켓(조울증을 앓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시장을 의인화한 표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라며 “저평가돼 있는 종목들을 찾아 장기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1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엄 사장은 30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채권 운용과 파생상품본부, 홀세일 판매 등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한 직장에서만 오래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자신의 성격을 꼽았다. 엄 사장은 자신을 “장기 투자하듯 업무든, 개인적인 취미든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면 쭉 몰입하는 성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에는 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며 “반포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할 때 30㎞ 정도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애용한다”고 밝혔다.

취임 6개월···변화보다 회사 본연 가치에 집중

엄 사장은 올 3월 취임 이후 리서치 부서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펀드매니저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던 기존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협력을 통해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을 채택했다. 엄 사장은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해서 큰 펀드를 맡기고 경험이 없는 신입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작은 펀드를 맡겨왔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며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집단 지성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엄 사장은 동시에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적어도 남들보다는 더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며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맡은 회사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갖고 (담당 분야를) 꼼꼼히 살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 자산운용사 대비 상대적으로 부족한 해외 주식 분야에도 공을 들였다. 장기적으로는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면서도 해외 자산운용사들과 협업을 통해 당장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신영자산운용은 현재 115년 전통의 영국 액티브 자산운용사 베일리기포드(Baillie Gifford)와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베일리기포드는 2013년 주가가 6~7달러였던 테슬라의 회사 가치를 알아보고 11년 넘게 장기 투자할 만큼 가치 투자에 진심인 회사다. 지난해 9월 신영자산운용은 베일리기포드와 ‘신영 베일리기포드 글로벌그로스 펀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해당 펀드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20%가 넘는 수익률을 달성하며 순항하고 있다.

엄 사장은 “자산운용사도 결국은 고객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며 투자자들과의 소통 강화에도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장세에서는 투자자들과의 신뢰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리한 수익 추구는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무너트려 장기 투자에 대한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엄 사장은 “역설적이지만 저는 자산운용사가 너무 수익률을 좇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단기 수익률이 아닌 고객의 돈을 안전하게 굴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으면 돈은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엄준흠 신영자산운용 사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엄 사장은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이후 큰 고민 없이 증권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졸업했을 당시에는 회사를 골라서 갔었다”며 “선배들이 많이 가기도 했고 보수도 괜찮아서 증권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엄 사장의 대학 동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함께 증권가에 입성했던 친구들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엄 사장은 “김기현 키움투자자산운용 대표와 김홍기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대표 모두 대학 동문”이라며 “학생 시절 같이 당구장도 많이 다니고 카드 게임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엄 사장은 취임 이후에도 친구들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증권 업계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각자 소속된 회사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라고 설명했다. 엄 사장은 “키움운용의 경우는 아무래도 김기현 대표가 채권 전문가다 보니 그쪽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타임폴리오는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모 펀드에 전념···내달 신상품 출시 계획

신영자산운용은 현재 출시됐거나 출시 예정인 ETF 상품이 없다. 엄 사장은 향후 출시 계획도 아직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몇 년 새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대형과 중소형 운용사들을 막론하고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떠올리면 차별화되는 행보다. ETF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거래의 편의성이 신영자산운용의 투자 철학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엄 사장은 “우사인 볼트가 100m 경주를 전문으로 하듯 각자 회사마다 전문 분야가 있다”며 “우리는 ETF보다는 펀드에 더 특화돼 있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는 그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엄 사장은 다만 ETF의 장점도 높게 평가했다. ETF는 같거나 비슷한 업종의 종목 여러 개를 담고 있어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든 상품을 사고팔 수 있어 일반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런 장점에 힘입어 지난 몇 년간 ETF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ETF 총자산순액은 157조 5211억 원이다. 지난해 8월 106조 4138억 원에서 불과 1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장 종목 수는 760개에서 881개로 15% 넘게 늘어나며 국내 ETF의 인기를 증명했다.

엄 사장은 그러나 “ETF가 지닌 거래 편의성이 득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TF가 거래가 쉽고 거래 수수료마저 저렴한 탓에 장기 투자 유인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논리다. 엄 사장은 “미스터 마켓에 휘둘리며 단기 고수익을 좇아 매수와 매도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남는 것이 없다”며 “거래의 편의성은 소위 말하는 ‘복리의 마법’을 없앨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엄 사장은 회사 주력 상품인 공모펀드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올 7월에는 무려 7년 만에 목표전환형 펀드인 ‘신영기업가치레벨업목표전환형’ 상품을 출시하며 출사표를 냈다.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 환원에 힘쓰는 기업 중 40여 개를 추려 구성된 해당 펀드는 목표 수익률인 8%를 달성하면 채권형으로 전환돼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게 특징이다. 엄 사장은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지수 추종 패시브 펀드 상품보다는 회사 운용 능력에 따라 상품 수익률이 달라지는 액티브 상품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0년간 신영에서 일하며 쌓아온 운용 노하우를 살려 국내 액티브 공모펀드 전도사가 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음 달 중에는 대표 펀드인 ‘마라톤’과 ‘밸류고배당’에 이어 또 하나의 장기 투자 펀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걸러낸 3~40개 기업으로 ‘압축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액티브 전략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엄 사장은 “가치와 성장을 적절히 밸런스해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진짜 액티브다운 액티브 펀드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지킬 수 있는 목표수익률로 믿음 줄것

엄 사장은 투자자들에게 장기 투자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고려하고 있다. 단순히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목표 수익률을 과장하는 것이 아닌 정말 지킬 수 있는 수치를 제시해 고객과의 신뢰를 쌓겠다는 방침이다. 엄 사장은 “예를 들어 10% 수익률을 목표로 만든 펀드가 수익률이 5%에 그쳤다면 운용 보수도 절반만 받는 식의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엄 사장은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에게 ‘트레이딩(거래)’이 아닌 ‘투자’를 하라고 당부했다. 지금같이 낙엽 하나만 떨어져도 증시가 탁 무너져버리는 민감한 장세에서 무작정 덤비기보다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믿고 기다릴 것을 권유했다. 자신이 내린 선택에 확신이 없다면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별 주식이든, ETF든 결국은 투자를 위한 목적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지, 거래를 위한 투자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엄준흠 신영자산운용 대표

he is··· △1965년생 △중동고 △서강대 경제학 학사 △1991년 신영증권 입사 △2008년 신영증권 파생상품본부 담당임원 △2011년 신영증권 파생상품본부 본부장 △2015년 신영증권 Sales&Trading 부문 부사장 △2020년 신영증권 자문위원 부사장 △2024년~ 신영자산운용 사장

이정훈 기자 enoug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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