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때문이라고?…자유 빼앗지 않는 돌봄도 있더라

김은형 기자 2024. 9. 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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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요리아이의 숲’ 입소자들이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무라세 다카오 제공

김은형 | 문화데스크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워워 흥분하지 마세요). ‘돌봄, 동기화, 자유’라는, 도통 안 당기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전 국민 강제 독서를 시켜야 할 만큼 훌륭한 책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했다. 도쿄나 홋카이도에 사는 일본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으려나? 후쿠오카에 살았더라면 좋았을걸. 이 책이 소개하는 치매 노인 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이 후쿠오카에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만들어진 ‘요리아이의 숲’은 치매 노인의 이상향 같은 곳이다. 이상향이라니 요즘 유행하는 호화 시니어타운 같은 럭셔리 리조트형 시설인가 싶지만 일본식 다다미 거실이 있는 소박한 가정집이다. 환자 1인당 요양보호사 수가 어쩌고 하는 일반적인 노인 요양시설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스럽고 첨단인 것들은 하나도 없지만 이곳에는 책의 부제처럼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있다. 우리가 ‘집에서 늙어 죽고 싶다’고 열망하는 단 하나의 이유, 하지만 값비싼 최고의 시설에도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것, 자유다.

이곳 노인들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배뇨 조절이 안 돼도 본인이 싫으면 기저귀를 차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밖을 맘대로 나가도 돼서 어떤 노인들은 인근에 있는 집과 이곳을 내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 치매 노인들에게 이게 가능하냐고? 실종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92살 가즈에씨는 요리아이의 수세식 화장실에선 도무지 일을 볼 수가 없어서 수십년 쓴 낡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동네 산책도 즐겼다. 문제는 치매로 기억이 흐려지는 데다 도로 확장 등으로 머릿속에 새겨졌던 지도가 바뀌면서 자꾸 길을 잃었다. 어느 날 사라진 가즈에씨를 찾기 위해 직원들과 헤매고 다니며 소장이자 저자인 무라세 다카오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죽으면 어떡하지?’ ‘(가족들이) 고소하면 어떡하지?’ ‘가족들은 돌봄이 얼마나 고생인지 이해하고 있으니까….’ ‘친척이 고소할지도 몰라.’ ‘당연히 책임을 추궁당할 거야.’ 머릿속은 치매 노인이 실종됐을 때 보통 보호사들이 하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도 끝내 그가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생각은 이랬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가두어도 되는 거야? 인지저하증인 사람은 안전을 위해 자유를 빼앗아도 상관없는 거야?’

본격적으로 수색을 시작하고 반나절 만에 가즈에씨를 찾은 요리아이의 대책은 뭐였을까. 가즈에씨를 외출 금지하는 게 아니라 요리아이 인근 주택가의 중계기지화, 즉 센터 반경 200m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가즈에씨가 서성이는 걸 보면 알려 달라는 협조 부탁이었다. 요리아이는 돌봄을 ‘관리’가 아닌 ‘태도’로 접근한다. 치매 노인을 훌륭한 시설로 통제와 격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목에 뭔가 턱 걸렸다. 만약 내 어머니가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요리아이는 물론 이 문제를 가족에게 알리고 상의해서 저런 대책을 세웠다. 불안할 가족을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해 논의도 했을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돌봄이 요양사나 의료진 같은 담당자만의 것일 수는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설에 위탁하더라도 가족의 협조와 철학이 없으면 돌봄은 제대로 완성될 수 없다.

추석 연휴 때 지난여름 돌아가신 친척 어르신의 간병 이야기를 그분의 자식들과 하다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이런저런 연명치료를 정리하기로 의사와 논의를 했을 때 마지막으로 의사가 물었던 질문이 이랬다고 한다. “어르신 아들 있으세요?”

나는 이런 것도 아들에게 결정권이 있나 버럭했는데 사연인즉, 부모가 고통스럽게 투병을 할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고 나면 나타나 내 부모 살려내라고 절규하는 아들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몇달 전 들었던 연명의료 관련 강연에서 이 분야 최고 석학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게 다시 떠올랐다. 이런 효자들이 많으니 한국에 요리아이 같은,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 시설이 만들어지기는 요원할 거 같다. 아들아, 지금처럼 불효자로 평생 살아도 좋으니 중년 넘어 늙고 아픈 엄마 앞에서 난데없는 효자로 태세 전환은 참아주렴.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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