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무기 쥐여주며 휴전하라고?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이스라엘은 1년 가까이 전쟁을 끌면서 확전하고 있다. 미국의 무기 지원 없이는 그럴 수 없다. 가자 휴전을 원하고, 중동에서 확전을 막고 싶다고? 당장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중단하면 된다. 미국이 그럴 수 있을까?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이스라엘은 23일 레바논의 1600곳을 목표로 공습해 사망자 492명에 부상자 1645명을 발생시키며, ‘북방 화살 작전’을 개시했다. 가자 전쟁을 확전하는 3차 레바논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가자 전쟁 휴전 중재 노력이 시효가 다하고, 확전을 도발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절망한다는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헛웃음이 나왔다. 미국이나 바이든 행정부의 행태에 어이가 없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쥐여주면서, 휴전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자. 미 국무부는 지난 8월14일 이스라엘에 200억달러 규모의 무기 공급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F-15 전투기 50대, 첨단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대탱크 포탄 등의 무기 판매를 의회에 승인 요청했다. “현재와 미래에 적의 위협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26일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보면, 미국은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에 총 65억달러의 안보 지원을 제공했다. 신문은 “거대하고, 거대한 규모의 사업”이라는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특히 그중 30억달러는 5월에 승인됐는데, 당시는 미국이 가자 남부 라파흐에서 전면전을 벌이려는 이스라엘에 반대하며 일부 폭탄 선적을 중단하던 때이다.
그럼 미국은 이스라엘에 어느 정도로 무기 지원 중단 압박을 했는가? 당시 하원 내부 메모에 따르면, 공급이 보류된 폭탄은 2천파운드(약 900㎏)짜리 1800개와 500파운드(약 225㎏)짜리 1700개였다. “전쟁 이후 미국이 제공한 전체 군사 지원의 1% 미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이 무기와 탄약 공급을 지연한다고 공개 비난했다. 백악관은 부정확한 지적이라고 해명했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빚 갚으라고 호통치고, 미국은 절절매는 모습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이끄는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미국의 무기 수송 전문가들과 함께 “수백 가지 개별 항목”을 검토했다고 보도됐다. 미국이 지원 보류했던 폭탄들은 그 뒤 당연히 다시 제공됐다.
그럼, 이스라엘은 이 무기들을 자기들 돈으로 사는 것일까? 거의 공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인 2016년 이스라엘과 매년 38억달러를 10년 동안 지원하는 안보협정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에 이른바 “질적인 군사력 우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은 지난 4월 이스라엘에 대한 260억달러 규모의 안보지원 법안도 통과시켰다.
오바마 때 체결된 안보협정에 따라 매년 제공되는 38억달러 중 무기 구입에 33억달러, 미사일 방어망에 5억달러를 썼다. 이스라엘은 이 돈으로 역사상 최강·최신 전투기라는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를 무려 75대나 주문해, 30여대를 넘겨받았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 중 F-35를 실전에 사용한 나라는 이스라엘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하는 데 안달이 났다. 2500만달러 이상의 무기 판매는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금액을 그 이하로 쪼개서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았다. 이렇게 100건 이상 판매했다. 탱크, 탄약과 포탄을 지원하는 총 2억5300만달러 규모의 지원 2건은 대통령의 긴급권한을 발동해, 아예 의회 심사도 피했다.
미국이 이스라엘 입장을 옹호하고 지원하고, 가자 전쟁에서 무기 지원도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가 미국의 휴전 중재 노력에 응하는 척하다가는 결국 번번이 걷어차고, 삐삐 테러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확전을 도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빚 독촉을 하는 빚쟁이에게 빚을 갚는 식으로 무기를 계속 지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초식인지 이해가 안 된다.
미국 내 유대인 파워가 커서,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이해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이다. 중동 확전이 미국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쥐여주며 자해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전에도 매해 이스라엘에 30억달러를 직접 지원했다. 이스라엘 국민 1인당 500달러이다.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을 엿 먹여도 묵묵히 지원했다. 분탕질 치는 자식에게 유흥비를 주는 어리석은 부모이다.
이스라엘은 1년 가까이 전쟁을 끌면서 확전하고 있다. 미국의 무기 지원 없이는 그럴 수 없다. 가자 휴전을 원하고, 중동에서 확전을 막고 싶다고? 당장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당분간 중단하면 된다. 미 의회가 무기 지원을 의결해도,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다. 미국이나 바이든이 그럴 수 있을까?
Eg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비판 체코 기사’ 뜨자마자, 한국대사관이 전화기 들었다
- [단독] 부라보콘의 ‘콘’ 바뀌었는데, 왜 공정위가 ‘칼’ 뽑았나
- 이스라엘군 “작전 새 단계 진입”…레바논 지상전 시사
- 이재명 “임종석 ‘두 국가론’ 당 입장 아냐…헌법상 한 영토”
- 아이유·임영웅으로 수십억 번 상암경기장, 잔디엔 고작 2.5억
- 검, ‘김 여사 무혐의’ 질주하다 삐끗…‘윤 대통령 부부 처분’ 답해야
-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의혹 뭉개자…내부고발자 ‘공개 투쟁’
- “의료계, 블랙리스트 피의자를 열사로 둔갑” 응급의학 교수 실명 비판
- 김대중재단, 26일 ‘DJ 동교동 자택’ 재매입 협약 체결
- 검찰, 김건희-이종호 주가조작 수사 개시에 ‘수십차례 연락 기록’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