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옛 직위 놓지 못하면 외톨이 되기 십상이죠"

2024. 9. 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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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항 액티브 시니어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 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오주석(왼쪽부터) 박영환, 김진동, 우선자씨가 지난 8월 9일 포항시 신중년사관학교 교장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_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김진동 신중년사관학교 교장 : 포항시 장기면 양포교회 담임 목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신중년사관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10여 명씩 소속 학과와 담당 교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노인학교와 확실히 구별된다. 또 입학식과 졸업식, 생일파티, 소풍, 해외여행이 있고, 모든 학생이 악기, 댄스, 게이트볼 등의 동아리 활동과 자원봉사를 한다.

박영환 신중년사관학교 교수 : 포스코에서 은퇴할 즈음에 회사에서 마련한 은퇴자 프로그램인 그린 라이프 서비스를 통해 회사 바깥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았고,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다. 이후 신중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학교에서 탁구 등 생활 체육 강사와 담임 교사로 일하고 있다.

오주석 시니어매일 기자 : 저도 포스코 출신이라, 역시 같은 은퇴자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다. 이후 등산 여행을 좋아해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며 글쓰기에 관심이 커졌고, 시니어매일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기자를 모집할 때 응시해 합격한 후 활동하고 있다.

우선자 신중년사관학교 교무실장 : 포항시청 평생학습원 소속으로 신중년사관학교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신중년사관학교는 전국 평생교육원 평가에서 2년 연속 1등을 차지했다.

박영환 신중년사관학교 교수

_ 박, 오 선생님은 모두 평생 포스코에서 근무하고 은퇴하셨는데, 포스코 동료들을 계속 만나시는지.

박 : 퇴직 동기가 입사 동기보다도 가깝다. 입사 동기는 나이 차이도 나고 또 각 부서로 흩어져버리면 끝이다. 은퇴는 같은 나이 또래이고, 퇴직 이후 생활도 비슷해 친구가 되기 쉽다. 은퇴한 지 17년 넘었는데 매월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은퇴 동료들을 보면 포항 출신이 별로 없다. 은퇴 후에도 60~70%는 포항에 계속 산다.

오 : 포항 출신이다. 직장 때문에 수도권 등에서 살다 은퇴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이 많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한 친구 중 20% 정도가 돌아온 거 같다.

_은퇴자로서 왜 포항에 사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오 : 포항은 바다와 산이 주변에 있고 또 교통이 좋으니까 레저 생활하기도 괜찮다. 청춘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이 사귀었던 친구들이 포항에 많이 있으니 타지 출신도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부인들이 더 포항에 살고 싶어 한다.

박 : 저는 대구가 고향인데 대구 친구들은 만날 일도 거의 안 생기고 어떤 모임에 초대가 오면 한 번씩 가는 정도다. 반면 포항 친구들은 늘 만나니 대화의 질이 높고 폭도 넓다. 같은 직장에 근무했기 때문에 생활 수준이나 생각도 비슷하니 편하다.

오주석 시니어매일 기자

_포항시민 중에는 포스코 직원들에게서 어떤 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오 : 은퇴 후 마라톤과 등산을 하며 포스코 외부 지인들을 많이 사귀었다. 포스코를 떠났다면 잊어버려야 한다. 그걸 계속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 결국 자신만 아웃사이더가 된다.

_사관학교에도 포스코 출신 학생들이 많은가.

우 : 많다. 그런데, 은퇴할 당시 직책을 그냥 마음에 품은 채 살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다. 포항시청 은퇴자들도 비슷하다. 여기서 상하관계에 있던 학생과 조우하면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입학식에서 이사 출신과 부장 출신이 만났는데, 부장 출신 입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걸 본 적도 있다.

_은퇴자들 중에 과거 직위 때문에 학교생활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박 : 개인의 성품에 따라 많이 다르다. 과거를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걸 못 하는 사람은 주로 상사였던 사람이 그만둔다. 과거 포스코가 수직적인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영향도 적지 않다.

오 : 그럴수록 은퇴자의 개인 노력이 중요하다. 은퇴 후 나보다 교육과정에 먼저 등록한 과거 부하 직원을 만나면 먼저 ‘선배’라고 부르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포스코의 권위적 문화도 있지만, 개개인의 권위 의식이 더 큰 문제다.

김진동 신중년사관학교 교장

_은퇴자는 지식과 경험이 쌓여 있다. 이런 연륜을 활용해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다는 갈증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김 : 신중년사관학교를 세우면서 평생교육과 함께 은퇴자가 의미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목표로 세웠다. 처음에는 이웃돕기 바자회에서 시작해 금전 기부와 재능 기부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새터민들에게 피아노 레슨이라든지 예술 교육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또 다문화가정 지원과 돌봄 학교 교사로 참여해 영화 관람 등 교외 활동을 동반하거나 간식도 제공하고 있다. 매년 50명 정도에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_포항에서 살면서 은퇴자로 느끼는 불편이나 아쉬움이 있다면.

오 : 우선 포항에 병원이 부족해 큰 병에 걸리면 대구나 서울로 가야 하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70대, 80대를 위한 경로당 같은 시설은 많지만, 60대가 갈 만한 곳은 애매하다. 서울 수도권에서 실시하는 노인 대중교통비 할인 같은 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김 : 포항 지역 병원은 암 같은 큰 수술은 아예 안 한다. 또 연금과 퇴직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스코나 공무원 출신 은퇴자를 제외하고는 형편이 어려운 시니어들이 많다.

_신중년사관학교에 오시는 분은 대부분 연금을 받는 분들이신지.

김 : 많다. 국민연금을 받는 분들이 60% 정도 될 것 같다.

오 : 국민연금 못 받으면 정부에서 노인 기초연금을 주지 않나. 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김 : 교사로 퇴직해 연금을 받는 분이 이런 불평을 하셨다. 똑같은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본인은 병원비가 800만 원 들었고, 옆 병상 환자는 연금도 안 부었는데, 병원비가 몇십만 원이라는 것이다. 연금 부으려 평생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_연금 생활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다. 은퇴자 입장에서 고쳐야 할 다른 사회제도가 있다면.

오 :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참 많다. 하지만 노동 관련 법규가 은퇴자의 재취업을 어렵게 만든다. 1년간 고용하면 인센티브나 상여금 연차를 줘야 하는 규정들을 은퇴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은퇴자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김 : 우리 학교에서는 내년부터 재취업 과정을 추가하려 한다. 돌봄이나 도배 등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7, 8가지 직업 교육을 진행하고 이수한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협동조합 등을 만들 계획이다.

우선자 신중년사관학교 교무실장

_현재 60·70대 세대는 노후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도 많지만, 안정적으로 연금 생활을 하는 분들도 퇴직 후 노후 생활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을 텐데.

우 : 그런 문제들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이런 사업 참여 희망자를 모집하면 형편이 괜찮은 분들도 적극적으로 신청해 꼭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분들에게 양보하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얘기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마음을 때렸다. 그분은 “제가 돈 때문에 가겠습니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 갈 데가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평생 일을 했는데, 일하러 나가는 게 없다는 것 때문에요”라면서 “일 나가서 동료들과 함께 점심 나눠 먹으러 2만 원짜리 도시락을 싸 갑니다, 일당보다 더 나가요”라고 하셨다.

박 : 지금 노년 세대는 놀 방법을 모르고, 안 놀아봤기 때문인 거 같다.

오 : 그런 점도 있지만, 공공 일자리 사업을 ‘용돈벌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나라가 노인에게 용돈을 주려 한다면 기초연금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 사업이라면 기여하는 노동량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다.

김 : 실제 공공 일자리 사업에 나가보면, 출석한다고 그냥 돈을 주는 게 결코 아니다. 작업반장을 뽑아서 일일이 평가해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그런데도 여유가 있는 분들도 적극적으로 신청해 늘 경쟁률이 높다. 작업장에 외제차를 타고 오는 분들도 더러 있다.

_포항이 액티브 시니어가 살고 싶은 고장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

오 : 고령사회가 될수록 부부나 혼자 사는 가구도 증가하는데, 포항시가 계획적으로 특정 지역에 은퇴자들이 살기 적합한 새로운 타운을 건설해 저렴하게 공급하면 전국에서 액티브 시니어들이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김 : 전북 고창에 건설된 실버타운이 정말 잘 되어 있다. 거긴 저소득층 대상은 아니고 경제력을 갖춘 은퇴자들이 남은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해, 집마다 거주자가 4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벨이 울리는 장치도 설치돼 있다. 참고할 만하다. 더 덧붙이자면, 신중년사관학교가 처음 설립됐을 땐 4년제였는데,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2년제로 축소됐다. 명분은 찬성하지만, 이미 전국에 유사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난 만큼 포항에서는 4년제로 다시 복귀했으면 좋겠다. 4년제 당시 형성된 소속감과 선후배 관계가 졸업 이후에도 이어져 사회 공헌 등 여러 가지 선순환을 만들어냈는데, 그런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우 : 노래 배우기 같은 여가와 취미활동 위주인 통상적 노인대학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4년제 복귀가 중요하다. 은퇴 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근린 시설을 물어보면 의료시설 다음이 교육시설이다. 평생교육 기관 기반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던 시기에 2년제로 축소돼 또 다른 노인대학으로 변해가는 것이 안타깝다.

글 사진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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