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앞두고 법적공방 펼치는 고려아연·영풍…변수로 작용할 카드는?

이진주 기자 2024. 9. 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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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사진)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연합뉴스·고려아연 제공

다음달 4일 종료가 예상되는 영풍·MBK파트너스(MBK)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앞두고, 고려아연과 영풍·MBK의 경영권 분쟁이 법률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측이 ‘맞고소’로 대립하면서 치열한 법적 다툼이 예고된 가운데, 고려아연이 정부에 국가핵심기술을 신청하면서 경영권 갈등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영풍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노진수 전 대표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원아시아파트너스 등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결정, 해외 자회사인 이그니오 홀딩스에 관한 투자 결정 및 씨에스디자인그룹(현 더바운더리)과의 인테리어 계약 체결 과정에서 고려아연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영풍은 “동업정신을 파기하고 회사를 사유화한 경영 대리인 최윤범 회장 및 고려아연의 수상한 경영행보가 시작되었을 당시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던 노진수 전 대표이사에 대해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영풍은 지난 3월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의 해외 계열사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신주를 발행한 것을 두고 서울중앙지법에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7월에는 고려아연의 황산 취급 대행 거절 조치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또 지난 13일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19일에는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정태웅 대표 등에 대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최 회장의 심문 기일은 오는 27일이다.

고려아연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고려아연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영풍그룹 계열사 영풍정밀은 지난 20일 영풍이 MBK와 맺은 주주 간 계약으로 인해 영풍법인이 손해를 봤다며 장형진 영풍 고문과 MBK, 김광일 MBK 부회장, 영풍의 사외이사 3인 등 5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고소장 접수 하루 만에 이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김용식)에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과 함께 영풍정밀도 MBK·영풍의 공개매수 대상이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4~5년 전 영풍이 유해 폐기물을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했던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추가 고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고려아연은 이 외에도 명예훼손 등 형사고발, 이사회 의사록 및 영풍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 영풍 이사진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에 따른 감독 당국 진정 등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매수에 나서게 된 배경 등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양측의 공방이 지배구조 비판에서 법률 다툼으로 확대되는 와중에 고려아연은 국가핵심기술 신청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이날 고려아연은 전날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핵심기술 판정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은 전자,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국내 첨단산업의 기초 소재 핵심 공급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판정을 신청한 기술은 고려아연과 자회사 켐코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기술이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에 국가의 안전 보장 및 국민 경제의 발전에 중대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규정해 특별 관리한다.

정부 예산이 투입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 및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해외 기업·자본과의 인수합병(M&A) 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받게 되면 이번 경영권 분쟁에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마련된다.

고려아연은 MBK가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MBK는 한국 토종 사모펀드라며 맞서고 있다. 고려아연이 신청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를 판정하는 산업부의 결정은 이르면 다음달 중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영풍은 이날 MBK 측 공개매수 주체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3000억원의 자금을 대여했다고 공시했다. 시장에서는 MBK가 공개매수 가격을 상향 조정하기 위해 자금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간 MBK는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주가가 이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상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무차입 경영 기조를 이어온 고려아연도 이례적으로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24일 20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한 데 이어 오는 27일 추가 CP 발행을 통해 2000억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 자금이 영풍·MBK의 공세에 맞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고려아연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예정된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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