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에 발목 잡혔나…소외된 혁신·첨단 의료, '볼멘소리' 커진다

박정렬 기자 2024. 9. 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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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유예 기간이 종료된 신의료기술/그래픽=김지영

장기화한 의정 갈등에 보건복지부가 행정력을 집중한 결과 '불똥'이 첨단 의료 업체로 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의료기기는 '시한부'처럼 한시적 비급여를 적용받고 암 등 난치성 환자의 신약 지원을 위한 법안은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의료 인공지능(AI), 고주파 치료기 등 혁신의료기기를 의료 현장에서 빠르게 쓸 수 있도록 하는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전날 복지부는 '새로운 의료기기의 시장진입 절차 개선' 공청회를 열어 평가 유예를 포함해 새로운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진입한 의료기기 업체는 되레 불안한 상황이다. 평가 유예는 이름처럼 신의료기술 평가를 유예하고 한시적으로 비급여 사용을 허용해 업체엔 '죽음의 절벽'을 넘게 하고 정부는 풍부한 임상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유예 기간은 2년, 이후 1년은 평가 기간으로 최장 3년간 비급여 사용이 허용된다.

그런데 유예 기간을 넘은 업체가 이미 많다. 복지부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 고시에 따르면 총 29개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 중 9개 기기가 유예 기간이 종료됐다. 이미 5월에 종료된 업체도 있다. 병·의원과 건강검진센터 등에서 널리 활용되는 뷰노 '딥카스', 베르티스 '마스토 체크', 와이브레인 '마인드스팀' 등도 시한을 넘긴 상태다.

복지부는 지난 5월에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시행계획'에서 올해 하반기 평가 유예 기간을 2년 늘려 최대 5년까지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사용 데이터를 축적하고 관련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다만, 수년 전부터 업계가 제기한 문제를 일몰 기한이 닥치고 나서야 조치하는 점. 아직 구체적인 기준도 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불확실성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 연장은 국내 기업의 성공 사례를 더욱 발전시키고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꼭 필요한 정책"이라며 정부의 관심과 빠른 제도 시행을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9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 전시회(KIMES 2024)를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의료기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바이오 업계도 좌불안석이다.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 개정안에 치료 목적 사용 부분이 아직도 세부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서다.

첨생법은 세포유전자, 줄기세포처럼 같이 인체 세포를 활용해 병을 고치고 신체 구조와 기능을 재생 회복하게 하는 치료의 근거가 되는 법안이다. 암을 포함해 기존 방법으로 치료가 힘든 중증난치질환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2020년 시행됐지만, 임상 연구에만 적용할 수 있고 대상 질환도 너무 적다는 비판이 있었다. 해외로 원정 치료를 떠나는 환자가 잇따르고 바이오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자 지난 2월 대상자를 확대하고 임상 연구 외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이 나왔다.

문제는 기존에 허용되던 연구가 아닌 신설된 '첨단재생의료 치료' 부분이다. 치료 목적 사용은 환자에게 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바이오 업체에는 새로운 수익 모델이었다. 천문학적 비용으로 임상 3상 연구를 추진하기 어려운 바이오 벤처는 기술수출에 목을 매야 했는데, 앞선 임상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 신약이라면 비용 청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바이오 업체에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동아줄'로 통했다.

하지만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첨생법 개정안 시행령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첨단 치료제를 찾아 환자는 여전히 해외에 나서고 업계는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당초 올 상반기 시행령 초안이 공개될 것이라 예상됐던 만큼 업계는 의정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첨생법 개정안은 바이오 벤처에게는 치료제 개발 동력을 확보하고 사업을 지속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예산 확보와 장비 운용 계획 등 준비할 사안이 많은데 시행이 코 앞인데도 세부안이 아직 나오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10월 중 시행령 입법예고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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