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VIP 격노설' 서면답변 거부…"국가안보와 관련"(종합)

박응진 기자 2024. 9. 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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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前 수사대장 "유재은 '혐의자·죄명 다 빼고 이첩 방법 있다'라고 언급"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 불출석…박 대령 측 "재판 지연 행위 의심"
해병대원 순직사고 조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8차 공판에 출석하기 전 기자회견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2024.9.2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해병대원 사망사고 관련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내용의 'VIP 격노설'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군사법원의 사실조회 요청을 거부했다.

25일 중앙지역군사법원과 해병대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 측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정진석 비서실장 명의로 지난 24일 오후 군사법원에 "귀 법원에서 사실조회를 의뢰한 사항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응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란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앞서 박 대령 측은 지난 3일 박 대령의 항명 혐의 관련 7차 공판 때 윤 대통령,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해병대사령부의 공보정훈실장 및 방첩부대장을 상대로 VIP 격노설과 관련한 사실조회 신청서를 제출했다.

재판부가 일부 인정한 윤 대통령 상대 사실조회 요청 내용은 △지난해 7월 31일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란 취지 발언을 했는지 △같은 회의에서 '수사권이 없는 해병대 수사단에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1사단장(임성근) 등을 형사입건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지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 내선번호 '02-800-7070' 전화를 이용해 이 전 장관의 휴대전화로 전화했는지, 했다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등이다.

재판부는 이들 내용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전화를 했는지 여부와 사건에 대한 관여가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해병대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직접 사실관계에 대해 공식 질의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윤 대통령을 상대로 한 서면조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조회 신청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거부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박정훈 대령 측 제공)

이와 관련 이날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8차 공판엔 해병대의 박세진 전 중앙수사대장(중령)이 증인으로 출석, 박 대령으로부터 VIP 격노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중령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경찰에 넘길 해병대수사단의 사건인계서와 관련해 '혐의자와 죄명을 다 빼고 이첩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박 대령에게 전화로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박 대령은 지난해 7월 31일 유 전 관리관이 통화에서 '죄명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 5월 17일 4차 공판 때 박 대령과의 통화에서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혐의자명, 혐의내용) 다 빼시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했다는 박 대령 측 주장에 대해 "그러지 않았다. 제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박 대령과 유 전 관리관의 2차례의 통화를 1차례는 스피커폰을 통해, 1차례는 휴대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었다는 박 중령은 "(유 전 관리관은) 사건인계서에서 혐의자와 죄명 다 빼고 이첩하는 방법도 있다는 형태로 얘기했던 것 같다"라며 "처음엔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2명만 (혐의자에서) 빼라고 하다가, 그게 안 되니 사건인계서에서 죄명, 혐의자를 다 빼라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박 중령은 "(당시 박 대령은 유 전 관리관에게) 위험한 발언이란 말씀도 했다"라며 "(그러면서) 언성을 높여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그 방법이) 법과 원칙엔 안 맞다는 형태로 말씀했다"라고 부연했다.

해병대원 순직사고 조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9.2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박 중령은 지난해 8월 2일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는 과정에선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중장)이 박 대령에게 전화를 해 "지금이라도 혹시 (사건 이첩을) 멈추라고 하면 멈출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고, 박 대령은 "죄송하다. 그렇게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김 사령관은 "알았다"라고 답한 후 전화를 끊은 뒤 다시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이첩) 안 된다. 지금 멈추라"라고 말했다고 박 중령은 진술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30일엔 박 대령이 이 전 장관에게 해병대원 사망 사고 조사결과를 보고했고 이 전 장관은 박 대령에게 "고생했다"라고 격려해 줬다는 얘기를 박 대령으로부터 들었다고 박 중령은 전했다.

박 대령은 이 전 장관에게 보고 후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해 박 중령에게 "보고 잘 끝났고, 예정대로 (경찰에) 이첩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는 이날 임기훈 국방대 총장(중장·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과 오혜지 해병대법무과장(대위)이 증인으로서 불출석함에 따라 직권으로 박 중령 및 권인태 전 해병대 정책실장(대령)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박 대령 측 정구승 변호사는 이날 재판 출석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증인 불출석을 통해 재판 지연 행위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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