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돕는 중소기업 4000여곳, 국세청 세무조사 유예
내년부터 저출생을 위해 노력한 중소기업은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가 유예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운영 중인 직장어린이집도 정원충족률에 여유가 있는 경우 지역 주민 등에 개방할 수 있게 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고위)는 25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겸한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성과 공유회'를 개최하고 기업과 근로자에게 필요한 이같은 내용의 제도 개선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 기조에도 저출생 3대 핵심 분야 예산만큼은 올해보다 22.2% 늘린 19조7000억원을 편성했다"며 "지난 2분기 출생아 수와 7월 출생아 수가 증가해 출산율 반등의 불씨를 살린 만큼 이제는 확실히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가 인증하는 가족친화인증기업이나 고용노동부 등이 선정하는 일·생활균형 우수기업 중 중소기업은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한다.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도 추가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과 부산, 광주, 대전, 충북 등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시행 시기는 내년 1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족친화인증의 경우 3년마다 인증을 연장해야 한다. 국세의 부과제척기간(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인데 그 사이 세무조사 대상이 될 경우 세금 부과제척기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1년이나 2년간 유예가 가능하다는게 저고위의 설명이다.
현재 가족친화인증기업은 5900곳인데 이중 중소기업이 약 4100곳이다. 일·생활균형 우수기업은 올해부터 매년 100곳씩 선정할 예정인데, 이중 중소기업은 60~7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들 기업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지원 중인 정책자금 및 수출신용보증 한도를 확대하고, 보증료 감면 등 금융지원을 강화한다. 각종 정부 지원 사업 참여시 우대도 늘린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저출생 관련 제도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내 눈치를 봐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며 "저출생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다음달 중 정부청사에서 운영 중인 국립 직장 어린이집 18개소를 정원 충족률에 여유가 있는 경우 지역주민 등에 개방할 수 있도록 운영 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다. 지자체 운영 직장 어린이집과 국가기관 328곳, 공공기관 138곳에서 운영하는 직장어린이집도 개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긴 출퇴근 시간 부담을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도록 남녀 모두 임신·육아기에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를 거쳐 마련한다.
불합리한 제도도 개선한다. 근로기준법에는 4시간 근무시 의무적으로 30분 휴게 시간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어, 반차 및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경우에도 30분을 더 기다렸다가 퇴근해야 했다. 이에 정부는 근로자가 원하면 휴게시간 없이 바로 퇴근이 가능하도록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들이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육아휴직 등에 따른 대체 인력 확보와 관련해서는 대체인력 풀 확충을 위해 디자인협회,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진흥협회 등 직종별 협·단체와 협력해 대체 인력 풀을 구성한다.
이 외에도 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일·가정양립 및 가족친화 기업 문화 확산을 위해 각각의 단체협의회에 '일가정 양립위원회'를 설치해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현장의 애로사항 수렴과 관련 제도 개선 과제 발굴 등을 추진한다. 자영업자와 플랫폼종사자, 특수고용·예술인 등 육아휴직 사각 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관계부처 TF(태스크포스) 논의를 통해 연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주 부위원장은 "지난 3월, 9월 인식조사 결과 미혼 남녀의 결혼 의향이 61%에서 65.4%로 4.4%P(포인트) 상승하고 자녀가 없는 남녀의 출산의향도 32.6%에서 37.7%로 5.1%P 증가하는 등 범 사회적 변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긍정적 모멘텀을 저출생 추세 반전의 계기로 확실히 만들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성과공유회에서는 △마녀공장 △한화제약 △LG전자 △포스코 △신한금융그룹 등 다양한 업종과 규모의 기업이 소개됐다. 화장품 중견 기업인 마녀공장은 전 직원이 코어타임(필수 근무시간대)마저 없는 완전 자율 출퇴근제를 운영 중이다. 한화제약은 생산공장은 주 4일제 근무제를 도입하고, 사무직·연구직은 시차출퇴근제를, 영업직은 스마트워크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지자체 대표로 나선 서울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상으로 운영 중인 워라밸 포인트제, 경력 보유 여성 대체 인력 파견 및 인건비 지원, 임신·출산에 따른 휴업시 임대료 및 영업손실액 최대 50만원 지원 등의 정책을 공유했다. 아울러 경제6단체와 여신금융협회는 공동으로 35개 기업의 사례를 담은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사례집'을 발간했다. 이 사례집은 앞으로 전국 기업과 지자체, 유관기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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