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작으로 시름하는 상주 고랭지 캠벨 포도 농가
착색불량에 알터짐까지
농가 수확 포기 사태 속출

“지난해 11월 융자받아 올 11월 만기가 도래하는 경영안정자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지난해엔 냉해로 수확이 크게 줄었고, 올해는 고온장해로 아예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수두룩합니다.”
고품질 ‘캠벨얼리’ 포도 주산지 경북 상주시 모동·모서·화동·화서지역 농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수확의 기쁨 대신 짙은 한숨이 일대를 감싸고 있다.
23일 오후 상주시 화동면 일대. 한창 수확이 이뤄져야 할 때지만 정적만 감돌았다. 포도나무에 달린 흰색 봉지엔 시뻘건 포도즙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랜 고온과 가뭄 끝에 20~21일 이틀 동안 쏟아진 폭우 때문에 열과(알터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내 버린 포도 봉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과원도 눈에 띄었다.
상주시 모동·모서·화동·화서 지역은 고품질 캠벨포도 최대 주산지다. 평균 해발고도 400m에 낮과 밤 온도차가 10℃이상 되는 준고랭지 지역이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극한 재해를 피하진 못했다. 7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40여일 이어진 열대야와 고온 현상, 뒤이은 폭우로 최악의 캠벨 포도 생리장해가 지역을 덮쳤다.
5950㎡(1800평) 규모 캠벨 농사를 짓는 김경열씨(62‧화동면 이소리)는 “포도 색깔이 까맣게 변해야 하는데 불그스름한 상태로 생장을 멈춰버렸다. 색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계속 달아놓았지만 그대로 썩거나 폭우가 온 뒤 알이 터지며 포도즙이 줄줄 흘러내고 있다”면서 “예년 같으면 착색이 안 된 포도를 가공용으로 수매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4297㎡(1300평) 규모 캠벨 농장을 운영하는 박희춘씨(71‧화동면 평산리)는 “평년 같으면 3㎏ 3000박스 정도를 수확하는데 올해는 640박스 정도 수확했다. 그마저도 색이 제대로 나질 않아 제값을 받지 못했다”면서 “이웃 농가는 2000평(6611㎡) 밭에서 아예 한송이도 수확하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동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상주농협(조합장 박경환)이 23일 작목반장 회의를 통해 농가별 피해율을 조사한 결과 예년대비 수확량이 70%에서 많게는 90%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박경환 조합장은 “냉해가 심각했던 지난해 9월20일 산지유통센터(APC) 캠벨 취급 금액은 6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같은날 기준 2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냉해로 취급량이 예년 대비 줄었는데 올해는 그보다 더 많이 줄었다”면서 “농가 피해는 지난해 극심한 냉해때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농가와 농협 관계자들은 올해 캠벨은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이 지역 캠벨은 통상 11월 초까지 저장‧판매하지만 수확‧저장할 물량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캠벨’ 흉작으로 지역농가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당장 11월에 상환해야 하는 1년만기 경영자금과 미리 빌려 쓴 농약값과 자재대금 같은 선도자금을 갚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성민 팔음산포도영농조합법인 회장은 “지난해 극심한 냉해로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후 11월에 피해 농가들은 경영안정자금을 융자받았다. 1년 만기로 11월초엔 상환해야 한다”면서 “농가들은 포도를 판매해 각종 자금과 대금을 갚는데, 올해는 최악 흉작으로 대부분 농가가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현재 달린 캠벨을 하루빨리 산지 폐기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해는 봄 냉해로 각종 영농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지만, 올해는 알솎기부터 봉지씌우기, 방제비 등 농자재 비용을 온전히 투입한 상황에서 수확을 할 수 없는 농가 체감 피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크다.
황영찬씨(52‧모동면 수봉리)는 “15년째 캠벨 농사를 짓지만 냉해에 이어 극심한 흉년까지 2년 연속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캠벨 농가 고통이 커지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역에선 2년 연속 극심한 자연재해로 타격이 큰 농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효구 상주시의회 의원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나서 포도 농가의 아픔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조합장은 “이상기후로 인한 착색불량도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에 포함하고, 강도가 갈수록 세지는 극한 기상에 대비해 재해보험 설계를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