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가계대출…카드사들 한숨 돌릴까
가계대출 둔화세에도 불확실성 여전…당국은 규제 저울질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달 들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 '풍선효과'에 따른 카드론 규제가 본격화할 것을 우려하던 카드사들에겐 희소식이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 등 수익성 악화로 카드론 취급을 늘려오고 있어 규제에 따른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가계대출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고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여전해 안심하기 이를 것으로 보인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20일 기준 가계대출 취급 잔액은 8월 말 대비 3조2215억원(0.4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월 말 9조6259억원 뛴 데 비해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올 3월(-2조2238억원)과 2월(4779억원) 이후 가장 부진한 수치기도 하다.
주택담보대출 역시 전달 말 대비 3조6733억원(0.65%) 크게 축소됐다. 신용대출은 아예 감소세로 돌아섰다. 취급 잔액이 2714억원 줄어들며 2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금융당국은 9월 가계대출에 있어선 대출 규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의 불똥이 튄 카드사들도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대출 규제의 풍선효과를 우려한 금융당국이 카드론마저 옥죌 조짐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최근 카드론이 크게 증가한 특정 카드사에 이달 말까지 리스크 관리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이달부터 하루 단위로 카드론 잔액 추이를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풍선효과나 건전성 리스크가 확인될 경우 한도 축소 등 규제가 시작된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카드론은 일부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8월 국내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전달보다 6000억원 증가한 41조8309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중 롯데카드, 현대카드, 우리카드 3사의 카드론 증액 규모가 전체 증가분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신용판매에서 떨어진 수익성을 확대하기 위해 고위험·고수익 상품인 카드론을 늘려온 영향이다. 가계대출 수요까지 쏠릴 경우 카드사들의 건전성은 물론 가계대출 관리에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결국 카드사들이 카드론 규모를 유지해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선 가계대출이 둔화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계대출이 안정적인 둔화세에 접어들어 은행권 대출 규제도 하나둘 완화되면, 당국이 풍선효과 우려로 카드론을 조일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란 시각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재 카드론 차주들은 대부분 실수요자들인 것으로 파악되지만 1금융권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다른 수요가 더해질 수 있는 점을 신경쓰는 것 같다"며 "가계대출이 안정적으로 줄어들면 이런 우려도 잦아들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둔화세 아냐…규제 가능성 여전
하지만 가계대출이 장기적인 둔화세로 접어들지 않는 한 카드론은 여전히 예의주시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가계대출 추이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풍선효과 우려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상승 기대, 이사철 수요, 기준금리 인하 전망 등 가계대출에 불을 지필 요인들이 남아있다는 게 중론이다. 시중은행들 역시 이달 가계대출 둔화세에도 잇따라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며 자율적인 대출 규제를 확대하는 흐름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향후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와 가계대출 증가세 장기화 여부와 관련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불안이 이어지겠지만 이후 점차 안정될 것으로 보는 견해와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병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도 3년 전 영끌·빚투 당시 카드론까지 끌어 쓰는 현상이 포착된 바 있는 만큼 카드사들을 계속 주시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서민들이 급전용으로 쓰는 카드론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주택 구입을 위한 수요가 더해지는지 주시할 예정"이라며 "서민 급전을 막으면 안 되겠지만, 추이를 보면서 '영끌'을 위한 수요가 감지될 경우 카드론 한도 축소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 역시 카드론 한도 제한을 본격화하기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카드론 한도를 줄이게 되면 서민들이 대부업체로 몰리는 등 부작용 또한 명확해서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서민들의 급전창구를 보장하면서 풍선효과를 관리해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금융위는 취약 차주를 고려해 저축은행 건전성 규제를 한 차례 미룬 전례도 있다. 금융위는 9월부터 5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고위험 차주에 대한 저축은행의 충당금 적립을 높이기로 했다. 충당금 적립액이 클수록 금융사는 대출을 억제하거나 한도를 줄이게 돼 취급을 축소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당국은 저축은행의 주 고객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 대한 자금 지원 필요성이 커진 점을 고려해 해당 규제를 1년 6개월 뒤 실시하기로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계대출을 이유로 카드론을 비롯한 여러 대출을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다"며 "과도한 개입이 이뤄질 경우 시장을 왜곡시켜 서민들이 사채 시장으로 몰리는 등 부작용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