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공학언어로 전한 유토피아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지난 칼럼에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샤를 푸리에(Franois Marie Charles Fourier)가 제안한 자급 자족형 유토피아 공동체인 팔랑스테르(phalanstere)에 대해 알아봤다.
그가 제안한 팔랑스테르는 이상 사회의 단위로서, 생산을 합리화하고 소비를 절약하는 전형적인 소생산자 사회였다. 푸리에는 이를 통해 모든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푸리에가 제안한 팔랑스테르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데다 건축학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게다가 단순한 제안에 그치지 않고 훗날 현실에서 구현되기까지 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는 러시아혁명 이후에 러시아연방의 공산주의 국가들, 심지어 북한에서조차 도시와 건축물을 지을 때 공동체 생활의 건축 모델로 활용했다.
그동안 관념적 제안에만 머물던 이상 사회가 푸리에의 도시학적 제안을 거쳐 공산주의 국가의 협동 시설을 통해 실체적 공간으로 완벽하게 창조된 것이다. 이상 사회를 구체화한 여러 가상공간은 시대마다 필요에 맞게 재해석되고 적절히 활용되었다.
팔랑스테르만 하더라도 산업혁명의 그림자에 가려진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자급자족형 공동체 시설로 구상
한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팔랑스테르는 사회주의사회나 공산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가 확연히 다른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적 거주 공간이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공동의 사람들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생활한다는 용도는 일치하기 때문에 적절히 변형해 사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본주의사회의 복합 리조트, 고급 복합 주거 공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동 주거 형태인 아파트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유토피아 모델은 탄생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면서, 각 사회에서 저마다의 용도에 맞는 도시 건축적 모델이 됐다.
샤를 푸리에의 제자였던 필립 휴버트(Philip Hubert)는 1884년에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예술가들을 위한 작고 편리한 아파트를 지었다. 현재는 호텔로 운영 중인 이 건물은 건축 당시에 팔랑스테르의 공동주택 개념을 적용해 설계했다. 당시 휴버트는 뉴욕의 고질적인 주택난을 해결하고 이웃과 원활하게 소통하기를 바라며 대규모 공동 주거 공간을 기획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현대적 개념의 아파트가 등장한 배경에도 샤를 푸리에의 팔랑스테르가 있다. 1952년에 프랑스 마르세유에 완공된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공동주택은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하고 건축한 현대 아파트의 시초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주상 복합 아파트와 거의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수백 세대가 거주하는 건물에는 마치 마을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처럼 학교, 병원, 공원, 수영장, 체육관, 테라스 등이 모두 모여 있다.
심지어 각 공간도 상업 지구, 주거 지구, 공공 지구, 녹지 지구를 계획적으로 분리해 쾌적함과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 건물은 국가의 의뢰로 설계되어 지어졌으나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의 확고한 신념도 담겨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는 당시에 사회 극빈층으로 내몰리던 도시 노동자를 위해 저예산 고효율의 공동주택을 건설하되, 최대한 쾌적하고 효율적인 주거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는 샤를 푸리에의 이상적인 공동체인 팔랑스테르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젊은 시절에 실제로 관찰했던 수도사들의 공동체 생활을 참고하고 응용했다.
과학기술과 만난 미래형 유토피아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관심 있게 추구해온 것 중 하나가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의 건설이다. 토머스 모어가 주장한 가상의 이상 국가인 유토피아는 그의 사상적 후예들에 의해 스토리가 더욱 탄탄하고 정교해졌다.
수많은 가상의 생각들은 글이나 그림, 건축 및 도시 계획 등 다양한 제안으로 발전하고, 이후 국가와 정치 시스템의 형태로, 도시와 건축 공간의 형태로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됐다.
시대에 따라서 이상 사회의 정의도 계속 바뀌었다.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간의 열정과 희망이 꾸준히 새로운 가상의 세계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다.
유토피아적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지라도 인류가 만든 모든 사회에서 공통으로 이루려고 노력한 인류의 꿈이자 이상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러한 제도적 차원의 이상 사회를 넘어 과학기술을 토대로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의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는 물론이고 일론 머스크가 이루려고 하는 화성의 정복,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을 통해 만들어질 우주 유토피아 등이 모두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 건설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어떤 순간이든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를 만들려면 초기에는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생각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후에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정교한 제안들이 필요하다. 이 모든 제안의 공통점은 가상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많은 가상적 이론의 제안들과 실체적 제안들은 오랜 시간을 지나며 쌓이고 융합되면서 마침내 현재의 가능성을 만든다.
물론, 현재의 가상적 이론의 제안들과 실체적 제안들도 이전의 것들과 잘 융합되어 미래를 향한 발전적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미래에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완벽한 이상 사회인 유토피아의 건설은 꾸준히 시도될 것이며, 현실 세계든 메타버스의 세상이든 지속해서 탄생할 것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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