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투혼’ 이임생의 눈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9. 25. 14:2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별 리그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넣었으나 1-3으로 역전패했다.

2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임생의 눈물을 보며 한국 축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저 한숨만 내쉬게 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별 리그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넣었으나 1-3으로 역전패했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수비 도중 백태클로 퇴장을 당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2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한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를 상대로 단 한 점도 얻지 못하고 0-5로 완패했다. 네덜란드는 그 대회에서 4강에 올랐으니 한국과 전력 차이가 상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국민들은 “굴욕적인 패배”라며 분노했고, 대표팀의 차범근 감독은 조별 리그가 아직 진행 중인데도 전격 해임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리그 3차전 벨기에와의 경기 도중 머리를 크게 다쳤는데도 붕대를 감은 채 끝까지 뛴 이임생 선수의 뒷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는 유럽의 강호 벨기에와의 대결이었다. 2패로 이미 토너먼트 탈락이 확정된 한국과 달리 벨기에는 2무를 기록해 한국만 이기면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벨기에 선수들은 내심 한국이 시합을 포기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로선 이대로 3전 전패 승점 0점으로 대회를 마무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군대에 비유하면 배수의 진을 치고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후반전에 우리 팀의 중앙 수비수 이임생 선수가 머리를 크게 다쳤다. 얼굴 위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이임생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계속 뛰었다. 의료진에게 “내가 빠지면 밀린다. 빨리 (붕대를) 감아달라”며 역정을 냈다. 결국 한국은 벨기에와 1-1로 비기며 귀중한 승점 1점을 챙겼다.
이른바 ‘붕대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임생은 프랑스 월드컵 후 5년이 지난 2003년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그리고 프로축그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와 감독을 지냈다. 그는 축구 행정가로도 변신해 2017∼2018년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도 맡았다. 이 자리는 축구협회 임원진의 일원으로 국가대표팀 운영과 축구 인재 육성 등을 책임지는 중요한 직위다. 이임생은 2023년 다시 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 겸 기술총괄이사로 복귀해 현재까지 국가대표팀 운영에 깊이 관여해왔다. 올해 2월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으로 사령탑을 잃은 국가대표팀 새 감독에 홍명보 전 울산 HD FC 감독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도 바로 그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인사하고 있다. 이 이사 왼쪽은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과거 국가대표팀 동료로 프랑스 월드컵을 비롯한 여러 국제 대회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임생과 홍명보가 24일 축구장이 아닌 국회의사당 회의장에서 만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홍명보를 대표팀 감독으로 뽑은 축구협회 결정이 적절한지 따져 묻겠다며 개최한 현안 질의에 나란히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붉은악마를 비롯한 축구 팬들이 “홍 감독은 안 된다”며 축구협회를 성토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심경이 편했을 리 없다. “홍 감독 선임이 부당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추궁이 잇따르자 이임생은 울먹이며 “내가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시합 도중 머리를 다쳤을 때에도 울지 않았던 그다. 이임생의 눈물을 보며 한국 축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저 한숨만 내쉬게 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