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 시장 잡으려고 던진 대출 규제, 임대 시장 불안 부추길까[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최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자 금융당국에서는 대출 규제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기계적으로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다 보니 일부 은행에서는 1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마저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9월 들어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되면서 같은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예전보다 대출을 적게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대출 규제가 끼칠 장기적 영향에 대해 살펴보자.
임대 공급 억제 나비효과, 전세난으로 번진다
집을 살 때 대출을 받는 사람은 주로 누구일까? 경제활동 기간이 길어서 자산 축적이 많이 된 40~50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아직 자산 축적이 덜된 20~30대의 대출 의존도가 높을 것이다.
또한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는 (대출 이자를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게 된다. 결국 대출 시장의 가장 큰 이용자는 20~30대 중 소득이 높은 계층이라 하겠다.
이런 이유로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이들 20~30대의 매수 비중이 줄어들고, 반대로 대출 규제를 풀어주면 20~30대의 매수 비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다음 표는 전국 아파트 매수자 중에서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국토교통부에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1월부터 가장 최근 자료인 올해 7월까지 5년 7개월간 평균치는 24.7%이다. 아파트를 사는 매수자 4명 중 한 명은 30대라는 뜻이다.
통계 작성 이후로 2022년을 제외한 매년 30대의 매수 비중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2022년에는 왜 30대의 매수 비중이 줄어들었을까?
2022년에는 주택 시장이 침체되었기 때문에 거래량이 줄어든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통계는 절대 거래량이 아니라 비중이다. 다시 말해 50~70대의 매수 비중은 늘어났는데 30대의 매수 비중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자산 축적이 충분히 되어 있는 50~70대와는 달리 30대의 경우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매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23년 2월부터 특례보금자리대출이 시작되자 30대의 매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올해 들어와서도 신생아특례대출이 인기를 끌면서 30대의 매수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8·8 조치의 핵심 3가지
그런데 지금과 같이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대출을 받아야 집을 살 수 있는 30대의 경우는 집을 사기 어렵게 된다. 누구든 집 사기를 포기한다면 세입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음 표는 2024년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을 나타낸 것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매매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전세나 월세 거래량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서울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면서 전세나 월세로 계약하는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매매가는 상승하지만 전세가나 월세는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금융당국에서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서게 되면 앞으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매 수요가 임대 수요로 전환되면서 전세 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선제적으로 8·8 조치를 내걸었다. 8·8 부동산대책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의 매입 임대 물량을 확대해서 시장에 안정적인 공공 임대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아파트가 아니라는 것과 임대 형태가 월세라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둘째는 최장 20년 임차가 가능한 기업형 임대 주택 사업의 확대이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되었던 뉴스테이 정책의 업그레이드 판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 역시도 전세가 아니라 월세 형태의 공급책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과연 민간 기업들이 20년이나 되는 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정책이 정부의 의도대로 성공한다고 해도 주택 시장에 공급되는 것은 월세 형태의 임대 주택뿐이다.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원금 손실 없이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는) 전세 제도이다. 특히 은퇴 세대와 같이 수입이 적은 계층은 전세 제도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다.
8·8 조치 중에서 전세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조치는 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한 장기적인 공급 확대이다.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에서 전세라는 형태로 임대를 살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건축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실행되는 정책이 아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서두른다고 해도 아파트를 건설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5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의 대부분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임대 물건의 공급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이 매매 수요에서 임대 수요로 전환하게 되면 전세난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전세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올해 8월까지 지난 1년간 전국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2.22%에 그쳤다. 과거 평균치 이하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임대 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 2년 전인 2022년 8월에 비해 전세가가 11.2%나 내렸다. 2022년에 신규 계약한 건에 대해 전세보증금의 11% 이상을 집주인은 내주어야 하고 세입자는 돌려받아야 하는 것이다. 2022년의 전세 시세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최소한 올해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내년 봄 이사철, 늦어도 내년 여름에 가면 시장 분위기는 180도 달라지게 된다. 2023년 8월에 계약했을 당시의 전세 시세가 가장 쌌기 때문에 2년 만기가 되는 내년 8월이 되면 전세 보증금을 상당히 올려주어야 한다.
그나마 계약갱신권을 쓰지 않은 세입자의 경우는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어도 계약갱신권을 예전에 썼던 세입자나 신규 계약의 경우는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취득세 중과 등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임대 물건을 공급하려는 다주택자는 없다. 여기에 등록임대사업자의 의무임대기간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등록 임대사업 강제 종료 조항 때문에 등록임대사업자들은 그 물량을 처분하거나 기존 임대 계약을 시세에 맞추어 인상하려 들 것이다. 이는 시장에서 싼 임대 물건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수요는 매매수요과 임대수요의 합이다. 매매수요를 억제하면 임대수요는 늘어나는 것이고, 다주택자나 등록임대사업자를 압박하여 임대물건의 공급을 억제하면 당연히 전세난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시기가 늦어도 내년 8월부터라 하겠다.
이런 전세난이 발생하면 집을 사기 싫어서 세입자로 남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을 살 능력이 되지 않아서 전세로 살 수밖에 없는 세입자에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균형이 있는 정책 수립 및 실행이 필요하다. 매매 시장 안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임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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