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의 무딘 정치감각…원맨쇼 할 땐가
야생에서 감각은 곧 생존에 직결된다. 광활한 바다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항해하는 바다거북은 지구의 자기장을 나침반 삼아 이동경로를 선택해서 생존한다. 원반형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는 가면올빼미는 접시모양의 얼굴로 소리를 받아 귀로 전달한다. 좌·우 귀의 위치와 방향이 비대칭인 것도 공간 속에서 음원을 정확히 찾아내 사냥하는데 도움을 준다.
'매의 눈'으로 불리는 매의 시력은 9.0이라고 하고, 맹수는 뛰어난 후각과 청각으로 숨어있는 동물을 찾아낸다. 고양이는 빠른 동체신경으로 독사의 공격을 피하는 민첩함을 자랑한다. 참나무누에나방은 암컷이 발산한 페로몬을 수컷이 10km밖에서도 감지해 찾아가는 놀라운 후각을 지녔다.
반면, 양은 시력이 나쁜 걸로 알려진 대표적인 동물이다. 낭떠러지도 구분 못한 채 걸어가기도 하고 눈앞에 무언가가 보이면 졸졸 따라다니는 습성도 지녔다. 늑대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어서 양떼를 돌보는 양치기가 없다면 생존이 어렵다.
사람도 다를 바가 없다. 감각은 우리를 외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통로다. 시각과 청각 등 오감을 통해 정보를 얻고 소통하여 세계를 인식한다. 감각과 진화생태학을 연구하는 영국의 마틴 스티븐스는 '감각의 세계'에서 "우리의 감각은 외부 세계로 나가는 주요 관문으로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한다. 감각이 없다면 그 개체는 완전히 무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맨쇼로 끝난 용산 만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권 지도부의 24일 대통령실 만찬이 빈손으로 끝났다. "대통령 혼자 원전 이야기만 했고 말 그대로 밥만 먹는 자리였다"는 소리가 여당 내에서 흘러나온다.
지지율 동반추락의 원인으로 꼽히는 의정 갈등이나 김건희 여사 리스크, 민생문제에서 국민들이 불편해하고 아우성치는데 민감한 현안은 제껴둔 채 겉도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사진 한 장 찍고는 '화기애애했다'고 하다니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청을 대통령실이 거부한데다 만찬장에서는 여당 대표의 인사말 순서 같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의 '맹탕 만찬'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지도부가 구성된 지 2달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상견례와 함께 화합을 다지는 자리"라고 밝힌 것도 코미디에 가깝다. 특히 각종 현안과 난제가 산적한 엄중한 시기에 국정을 책임진 당정이 진지하게 해법을 논의하는 모양새는 보여주지 못할망정 밥만 먹고 헤어진 뒤 '화기애애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찬에 참석했던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5일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도 그렇고 당대표도 그렇고 거기에 있는 분들 다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모여서 화기애애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분들이 당면한 이슈와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 투표로 5년간 정부를 맡았다면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게 집권세력의 마땅한 책무다. 대통령이 여당대표에 등을 돌리고 소통을 거부한다면 국정의 난맥상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 때에도, 채상병 사건 때에도,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뒤에도 민심에 제대로 반응했다면 민심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명품백 사건 뒤에도 때를 놓쳤고 이제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으로 여론이 한층 흉흉하다.
민심에 반응하지 못한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될 지 모를 일이다. 큰 소리치거나 등돌리면 민심에 다가설 수 없다. 주변에서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니 제대로 들을 수도 없다. 정치인의 생존에도 민심에 반응하는 정치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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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재웅 논설위원 leejw@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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