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IP 잘 모르지? 4대 엔터사 '굿즈 갑질' 반복하는 까닭 [젠Z의 눈]
4대 엔터사 공정위 제재 받아
소비자 청약철회 방해한 혐의
상품 개봉하는 영상 없으면
물품 불량이어도 환불 안해줘
법적 환불 기간 멋대로 줄여
굿즈 판매 ‘꼼수’ 시정 가능성 낮아
200만원 과태료 ‘솜방망이 처벌’
2차 IP 벌금 내도 ‘남는 장사’
2Q 하이브 2차 IP 매출 1090억
판매 행태 바꾸려면 처벌 높여야
# 한번 구매하면 교환이든 환불이든 결코 쉽지 않다. 교환·환불 규정도 절차도 깐깐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공정위가 나서 '그렇게 하지 말라'며 과태료를 매겼는데도 달라진 건 없다.
# 심보가 고약한 장사치 이야기가 아니다. K-팝 굿즈를 판매하는 엔터사를 꼬집는 말들이다. 여기엔 하이브·SM엔터·JYP엔터·YG엔터 등 4대 엔터사도 포함돼 있다. 왜 이러는 걸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K-팝 팬 정소민(가명)양은 최근 플랫폼에서 '아이돌 굿즈'를 구매했다. 막상 굿즈를 받아보니 빠진 게 있어서 교환을 신청했는데 곧바로 거절당했다. 굿즈를 개봉하는 영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민양은 "택배 박스를 뜯고 포장을 여는 과정을 찍은 영상이 있어야 새로운 상품으로 교환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이미 포장을 뜯어서 이젠 반품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소민양 말대로, 굿즈를 개봉하는 영상이 없으면 제품이 훼손됐거나 빠진 채 배송돼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플랫폼이 요구하는 영상의 조건이 느슨한 것도 아니다.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 한 사이트에서는 영상 촬영 조건을 이렇게 소개했다. "불량 또는 누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택배 박스와 상품을 개봉하는 영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봉 영상에는 개봉 전 박스의 모든 면과 송장이 찍혀야 하고, 상품 개봉 장면이 온전히 보여야 한다."
또 다른 K-팝 팬인 10대 이하윤(가명)양은 구입 후 보관하고 있던 상품에 결함이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판매 사이트에 교환을 신청했는데, 상품을 수령한 지 일주일이 지나 교환·환불이 불가하단 답변을 받았다.
하윤양은 "단순 변심으로 반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받은 상품이 불량품이라 정상인 상품으로 교환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안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결함이 있는 상품의 경우 수령일로부터 최대 3개월 이내에 교환·환불을 받을 수 있다. 7일은 단순 변심에 의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기한인데 굿즈 판매 플랫폼 사업자들은 임의로 이 기한을 줄여 고지하고 있었던 거다.
개봉 영상을 찍고 기한 내에 보냈다고 해도 교환·환불을 장담할 순 없다. 굿즈 판매사에서 정해둔 '불량품'의 기준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5㎜ 이하의 찍힘' '상품간 눌려 발생한 하자' '소재 특성상 발생하는 상품 변형' 등 판매사가 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고지한 기준에 해당하면 교환·환불을 받을 수 없다.
이같은 사례는 소민양과 하윤양의 얘기만은 아니다. 굿즈의 까다로운 교환·환불 절차는 K-팝의 고질병에 가깝다. K-팝을 대표하는 4대 엔터사들이 이런 '꼼수'를 쓰고 있다는 점은 특히 문제다.
얼마나 심했는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섰다. 지난 8월 9일 공정위는 4대 엔터사(하이브·SM엔터·JYP엔터·YG엔터)가 운영하는 굿즈 판매 플랫폼에 시정명령과 과태료 각각 250만~300만원을 부과했다. 기만적인 방법으로 소비자 청약철회를 방해했다는 게 주요 혐의다.
그렇다면 이번 공정위의 제재로 4대 엔터사는 굿즈 판매 '꼼수'를 시정할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만~300만원대의 과태료는 전형적인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해서다. 과태료 수준이 너무 낮아서 기존 방식으로 판매할 것이란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기우杞憂가 아니다. 2019년에도 같은 혐의로 공정위가 아이돌 굿즈를 판매하는 8개 사업자에 과태료를 부과한 일이 있었다. 각 사업자는 400만~45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이번에 부과한 과태료보다 큰 규모였지만 5년이 흐른 현재 달라진 건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엔터사로선 벌금을 내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굿즈와 같은 '2차 지식재산권(IP)'은 엔터산업의 실적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2차 IP는 앨범·공연 등 1차 IP를 바탕으로 창출하는 부차적인 상품이다. 투자비용 대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하이브는 올 2분기 '굿즈(MD) 및 라이선싱' 사업 부문에서 10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17.0% 비중이다. 같은 기간 SM엔터는 'MD 및 라이선싱'으로 438억원을 벌어들였다. 비중은 하이브보다 8.1%포인트 높은 25.1%다. "갑질에 가까운 굿즈 판매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위는 "우리가 '굿즈 판매 행위'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4대 엔터사가 시정을 했고, 이를 참작해서 과태료 수준을 낮췄다"면서 "가까운 기간 내에 위반 행위를 반복할 경우 엄중히 제재할 계획"이라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공정위가 빠르고 강한 처벌을 예고하면 반복적인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서 "문제는 공정위가 얼마나 치밀하게 시장을 모니터링하느냐에 달렸다"고 꼬집었다. 과연 굿즈로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엔터사의 판매 행위는 근절될까. 지켜볼 일이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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