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길 뻔 했는데"…장인들 기술 모아 계승하자 결국 [원종환의 뉴트로中企]
전 공정 담당하는 국내 유일 LP 업체
LP 장인 기술 모아 '프레싱 기계' 국산화
이달 말 '스페이스 공감' 명반 LP로 출시 예정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좋은 LP 선사할 것"
"정도(正道)를 추구하는 기술로 레코드판(LP)에 정성을 담아내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국내 대표 LP업체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24일 "회사의 로고만 봐도 누구나 믿고 인정하는 양질의 LP를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사는 커팅(공디스크에 음원을 새기는 과정), 스탬퍼(대량 생산을 위한 도장판 제작), 프레싱 등 LP 제작 전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업체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LP산업에 대해 그는 "2020년대 초까지 이어진 LP의 인기는 레트로 열풍과 외부 활동이 제한된 코로나19 시기가 맞물린 결과"라며 "당시보다 LP 생산량은 많이 줄었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LP로 나오면서 시장만의 특별한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디지털 음반에 대응해 독자적인 LP시장이 굳어지고 있다는 게 하 대표의 생각이다.
'LP 부활' 꿈꾸며 장인들 기술 계승
국내 LP 산업의 부활을 알린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전신인 벨포닉스 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에서 업계 종사자들은 "진정한 음악의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꿈꾼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폐업한 뒤 명맥이 끊긴 LP 산업을 부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백희성 당시 벨포닉스 엔지니어가 2005년 LP 장인을 수소문하며 그들의 기술을 익힌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10년 국내에서 LP 커팅 기계를 유일하게 지닌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인수는 'LP 국내 생산'의 꿈에 날개를 달아줬다. 2016년 마장뮤직앤픽처스로 사명(社名)을 바꾼 이 회사에 하 대표가 합류하며 본격적인 LP 부활의 신호탄이 울린다.
하 대표는 "2010년 중반 LP 산업이 주목받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 회사 설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LP를 양산하기 위해선 노후화된 장비를 포기하고 새롭운 기계를 만들어내는 게 최대의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딥 그루브' 등 양질의 소리 위한 기술에 힘써
'계승하되 발전하자'. 하 대표를 비롯한 마장뮤직앤픽처스 직원들은 사사한 장인들의 기술을 발전해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로 뜻을 모은다.
하 대표는 "예전 기계를 고치는 수준으로는 양질의 LP를 제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한 끝에 장인들의 기술을 총집결한 프레싱 기계(압축기)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소벤처기업부의 디딤돌 사업을 통해 LP를 생산하기 위한 자동화기계의 제작을 지원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커팅 방식 '딥 그루브'도 마장뮤직앤픽처스가 고수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음원을 새기기 위해 LP 단면에 소릿골을 깊게 파는 이 기술은 LP만의 풍부한 음색을 살릴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하 대표는 "LP만의 질감과 소리를 구현하는 데 최적화된 기술"이라며 "이청, 이태경 원로 등 베테랑 1세대 엔지니어들의 기술을 계승해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P를 만드는 원료인 PVE(폴리염화비닐)을 구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하 대표는 "우리 기계에 적합한 PVC를 구하기 위해 국내외 10여 가지 업체를 만났다"며 "최적의 압력과 온도, PVC 성분값 등을 연구해 첫 LP 양산을 시작한 2017년보다 LP의 불량률을 절반 이상 줄였다"고 설명했다.
LP 양산에 탄력이 붙으면서 사세도 점차 커졌다. 2022년에는 경기 하남에 연면적 약 1322㎡ 규모의 공장으로 생산 거점을 옮겼다. 하 대표는 "연간 약 100여종의 LP를 생산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공장 안정화로 하루 평균 1500장의 LP를 찍어낼 수 있는 역량을 생겼다"고 말했다.
"존재하는 음악 LP, 해외와 비교해도 기술 밀리지 않아"
마장뮤직앤픽처스가 만든 LP에 담긴 음악 장르는 다양하다. 주 수요층인 4050을 겨냥해 '한국대중음악명반 100선'을 LP로 제작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달 말에는 '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로 불린 2000년대 명반을 LP로 선보일 계획이다. 하 대표는 "숨겨진 보물 같은 음악을 발굴해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유입에 힘입어 다양한 장르의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봄’의 OST가 올해 LP로 탄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버추얼 유투버 아이리 칸나의 음반과 게임 메이플스토리 OST도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손길을 거쳐 LP로 탄생했다.
하 대표는 "컬러 LP가 흑백 LP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우리 회사의 LP에 대해선 낭설에 불과하다"며 "PVC 성분이 동일하기에 색깔이 소리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시기에 있었던 LP 열풍이 사그라든 이후 LP 시장은 독자적인 영역을 꾸리며 성숙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LP만의 독특한 매력에 대해 하 대표는 '실제로 존재하는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LP는 관련한 장비를 구매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며 "그 자체가 음악을 예우하고 감상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볍게 소비되는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장뮤직앤픽처스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LP 회사로 거듭나는 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다. 하 대표는 "해외 유명 LP사와 비교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우리 LP가 부족하지 않다는 결론에 최근 도달했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은 LP를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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