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분쟁의 엇갈린 시작…'나한테 왜 그랬어요?'
고려아연 "영풍 산업쓰레기 문제로 관계 틀어졌다"
영풍 "고려아연 일방적 증자에 공동경영 파괴됐다"
1949년 고 최기호·장병희가 영풍을 공동으로 창업한지 75년 만에 두 가문은 남으로 갈라섰다. 최 씨 가문은 고려아연을, 장 씨 가문은 영풍을 독립 경영한다는 암묵적 합의는 알짜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깨졌다. 굳건했던 75년 동업의 균열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두 가문의 진흙탕 싸움에서 공개된 분쟁의 시작점은 서로 달랐다.
# 최윤범 시각
고려아연의 3세대 경영인 최윤범 회장 입장에서 영풍의 2세대 경영인 장형진 고문과 사이가 틀어진 계기는 '독성 산업 쓰레기' 처리 문제였다.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에서 40년 넘게 일한 이제중 최고기술책임자(부회장)은 지난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가문에 균열이 생긴 '순간'이 4~5년 전이라고 전했다. 경북 봉화 석포면에 위치한 영풍의 석포제련소에서 환경오염 문제가 터질 때다.
2018년 말 환경부가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한 석포제련소 지하수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의 최대 33만배의 독성 중금속인 카드뮴이 나왔다. 공장 바닥에 방치된 카드뮴이 함유된 공정액이 지하수를 오염시켰고, 낙동강까지 흘러갔다.
더 큰 문제는 50년 넘게 석포제련소에서 쌓여온 '산업 쓰레기'였다. 아연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카드늄·수은·비소 등이 담긴 찌꺼기다. 이제중 부회장은 "70만~80만톤 정도"라고 추정했다.
영풍은 지난 6월 말 기준 토양정화충당부채 1403억원, 제련 부산물 반출충당부채 633억원 등을 계상하고 있다. 환경오염 문제로 손실 가능성이 높아진 수천억대 빚이 쌓인 것이다. 최근엔 박영민·배상윤 대표이사가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로 모두 구속됐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영풍이 석포제련소에 쌓인 산업 폐기물을 고려아연이 운영하는 온산제련소에서 처리해주길 요구했다.
이제중 부회장은 "장형진 고문이 이(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어 했다"며 "이걸 막은 사람이 최윤범 회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부터 장형진 고문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 장형진 시각
영풍의 입장은 다르다. "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에 영풍과 관계가 틀어졌다"는 발언은 거짓말로 단정했다.
영풍은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몇 년 전 고려아연과 '자로사이트 케이크'(아연 생산 잔재물) 처리에 대해 협의했으나 최종적으로 없던 일로 됐다"며 "2019년엔 석포제련소의 카드뮴 공장을 폐쇄하면서 한때 고려아연에 카드뮴 케이크를 판매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다른 외부 업체에 판다"고 전했다.
장형진 고문이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고려아연의 일방적인 증자'다. 영풍과 손잡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김광일 부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가문의 공동 경영이 파괴된 계기로 고려아연이 외부를 상대로 진행한 증자를 꼽았다.
2022년 고려아연은 한화임팩트와 한화 해외계열사(Hanwha H2 Energy USA)를 상대로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두 회사는 고려아연 신주(6.88%)를 6406억원에 인수했다. 2023년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으로 세운 해외법인(HMG Global)을 상대로 신주 5272억원어치(5%)를 발행했다.
고려아연은 사업적 시너지를 위한 '지분 동맹'을 추진했지만 영풍 측은 자신과의 '지분 동맹'이 깨졌다고 받아들였다.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2021년 말 27.49%에서 올 6월 25.4%로 희석됐다. 업계에선 한화 등이 이번 분쟁에서 최윤범 회장 측 편에 설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최윤범 회장이 들어온 다음 제 3자 신주 발행을 영풍측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며 "두 번이나 겪으면서 영풍 측은 '최 회장이 공동 경영을 파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형진 고문은 '75년을 이어온 공동 경영 정신을 2세대에서 끝내는 게 맞다'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안준형 (why@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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