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규의 창] '국회 북' 대한축구협회, '수모'를 넘어설 때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창 밖으로 보이는 한국 축구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 불거진 공정성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마련된 국회 청문회는 명쾌한 해명도 없고, 결정적 문제도 드러나지 않으면서 지켜보는 팬들의 답답함만 가중시켰다.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는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정몽규 회장, 홍명보 감독 등 축구계 주요 인사들이 증인으로 대거 출석하여 감독 선임 과정의 투명성, 협회 운영의 공정성 등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았다. 특히, 축구 대표팀 감독이 국회에 출석하여 의원들의 질의를 받는 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 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2018년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이 국회에 출석하여 의원들의 질의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의 스포츠에 대한 무지로 야구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축구협회는 국회뿐만 아니라 팬들로부터도 전방위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축구협회의 불투명한 운영과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 의혹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번 국회 현안질의는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 배드민턴 협회 등 다른 스포츠 단체들의 문제점도 함께 드러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김택규 배드민턴 협회장 역시 국회에 출석하여 스포츠 단체들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행정에 대한 질타를 받았다. 체육단체를 관리 감독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인촌 장관 또한 대한체육회와 갈등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한국스포츠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는 한국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폐쇄적이고 투명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도 볼 수 있다.
축구협회는 왜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는가. 국회 현안질의에서 나타난 국민의 정서는 현재의 축구협회 행정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3선 의원인 전재수 위원장이 장장 10시간여 동안 진행된 현안질의를 마치면서 발언한 총평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정쟁을 벌이기만 하던 여야 의원들이 이처럼 한 목소리로 협회와 스포츠단체를 질타한 것은 처음 본다고 현재의 여론을 대변했다.
정몽규 회장으로서는 지난 12년 동안 3차례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국축구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과 팬들의 비난이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프로축구 승강제를 도입해 장기적 축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천안의 축구종합센터 건설, 80억 원이 넘는 후원금 기탁, 아시안게임 3연패를 비롯한 FIFA U20대회의 성공적 개최 등 그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정보와 사실과 달리 과대포장된 내용으로 비난을 받는 게 비정상적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협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를 잃었다. 감독 선임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누적된 협회 행정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는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국회에 출석했을 때와는 달리, 축구협회는 국회로부터 전방위적인 비판을 받았고, 팬들 역시 협회의 결정 과정과 그 불투명성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협회 운영에 있어서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진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협회가 팬들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신을 키웠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 명쾌하게 이뤄졌다면 청문회를 계기로 한국 축구가 새출발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도 못 했다.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자료제출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 사항이란 이유로 거부하면서 스스로 의혹 해소의 길을 차단했다. 물론 보안을 요구하는 대표팀 감독 선정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모든 자료를 제공할 수 없었겠지만 최소한 의원들의 요청에 성의를 다하는 진정성을 보였어야 하는데 서로의 입장 차만 강조하는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축구협회와 체육단체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단체는 내부의 사유화된 권력 구조를 타파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팀 감독 선임과 같은 중대한 결정은 협회 내 특정 인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외부 전문가와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소통 구조를 구축하고,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 체육단체들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회의 지적과 국민들의 비판을 단순히 넘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부 인사들의 권한 남용을 막고, 공정한 절차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으로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축이다. 그만큼 체육단체들은 그들의 권한과 역할을 더 무겁게 인식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3연임을 앞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4연임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 정몽규 축구협회장도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체육계의 비민주적 행정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과 감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스포츠는 국민적 관심사이자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분야이다. 따라서 정부는 체육단체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체육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기적인 감사와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현안질의는 단순한 국회 청문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 체육계의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이 도래했으며, 이를 통해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은 국회 청문회장에 선 '동네북'을 넘어선 '국회 북'의 한국 축구를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모'를 경험했다. 이 수모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승화됐으면 한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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